"주식은 둘째 문제…먹고살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
기업 펀더멘탈, 산업 경쟁력 강화 위해 규제 개혁 강조
상장·상폐 제도 개선 및 코스피200→코스피30 지수 수정 제안[대담 이승현 증권시장부장·정리 권오석 기자] “코스피가 4000은 넘을 겁니다. 다만 주가가 더 오르려면 기업의 펀더멘탈(재무상태·실적 등 기초체력)과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증시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안 교수는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위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한 국내 자본시장 최고 석학이자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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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안 교수는 산업 경쟁력과 기업의 펀더멘탈을 키우기 위해 신산업 규제 개혁이 필수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상장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코스피200→코스피30 지수 수정 등이 이뤄진다면 현 정부가 약속한 코스피 5000 달성도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놨다.
안 교수는 “미국은 1996년 당시 상장 종목수가 8600개 정도였으나 지금은 대략 4600개다. 종목 수가 반 토막이 났으니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버틸 수 있다는 기업만 남고 나머지는 상장 폐지를 시켜버리니 경쟁력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피200은 코스피 기업 중에서도 경제 규모가 크고 거래가 활발한 200개 기업을 선정해 주가 변동을 지수화한 것으로, 증시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벤치마킹 지수다. 200개 보다 적은 30개 우량 종목만 추려 산정하면 대표 지수가 더 오를 수 있고, 전체적인 증시 상승도 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음은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주가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관세협상이란 중요한 변수가 남았으나 (코스피가) 4000은 분명히 넘을 것이다. 그러나 주식은 두 번째 문제고, 우리가 먹고살 게 지금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주가가 더 오르려면 기업의 펀더멘탈(재무상태·실적 등 기초체력)과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근본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나.
△우리나라 인구 규모에서는 글로벌 1·2등 기업이 1~2개는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1등 기업이 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의 역할이 컸지만 점점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대만에서는 TSMC가 나타났고 우리나라와 1인당 GDP가 뒤집어질 위기다. 글로벌 1등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경제 체제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1등부터 10등까지 기업들을 줄세워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대체 언제적 5대 산업인가.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30년 전과 지금이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운 기업이 기존의 강자들을 무너뜨리고 1등으로 올라서야 혁신이다. 30년 전에 10등이던 기업이 1등을 한다고 혁신이 아니다.
-우리는 왜 혁신에 소극적인 걸까.
△대기업이 되는 순간, 감옥에 다리 하나 걸치는 셈이 된다. 국정감사에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하는데 누가 대기업 총수가 되고 싶겠나. 다만 미국은 다르다. ‘애플을 무너뜨리겠다’는 승부욕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나.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고 상황에서 판을 뒤엎어야 한다. 규제를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에 우리 경쟁력이 달렸다. 강점을 가진 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에선 민사 책임을 묻지만, 우리나라는 형사 책임을 묻는다. 테슬라를 예로 들면, 2016년 당시 자율주행에 따른 첫 사망사고가 나왔다. 당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6개월간 조사를 진행, 안전결함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렇게 사건을 종결시켰다. 테슬라가 아닌 우리나라 회사였다면 아마 문을 닫았을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다른 점은.
△미국은 1996년 당시 상장 종목 수가 8600개 정도였으나 지금은 대략 4600개다. 종목 수가 반 토막이 났으니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장 기업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상장을 통해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자금이 얇게 퍼지기만 하면서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
상장 및 상장 폐지 제도가 다르다. 미국에서는 상장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하다. 미국에서는 상장 기준을 지키지 못하겠다며 스스로 빠지는 기업도 있다. 버틸 수 있다는 기업만 남고 나머지는 상장 폐지를 시켜버리니 경쟁력이 있는 거다.
-코스피 5000도 가능할까.
△‘코스피200’ 인덱스(지수)만 바꾸면 5000까지 오를 수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 규모에서 코스피200이 어떻게 인덱스가 될 수 있나. 기업 200개는 너무 많다. 일본도 ‘니케이 225’(225개 대표 기업 지수)를 만들고 후회하고 있다. 프랑스의 ‘CAC 40’도 40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면 30개 정도면 된다. 주주환원 차원에서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잘하고, 지배구조가 탄탄한 기업들 30개만 추리면 된다.
-정권의 상법 개정 정책을 평가하면.
△방향성엔 동의하나, 학자 입장에서 ‘기업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이상하다. 주주 충실 의무는 당연한 것이다.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별개로 나눠버렸다. 주주 충실 의무를 넣겠다고 했으면, 정확한 개념을 정의하고 그 원칙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시했어야 했다.
-현 정부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사후가 아닌 사전 보호가 중요한 거다. 미리 걸러내야 하는데, 적은 인력으로는 사후 처리하는 데만 바쁘다. 금융소비자 보호의 핵심은 사고 예방이고, 양질의 인력으로 조직을 구성해줘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도입해야 하나.
△늦어도 20년 안에는 기존 금융시장의 30~40%를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가 대체할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급관리 능력이다. 스테이블 코인을 수시로 트레이딩(거래)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문적인 금융기관인 은행이 해야 한다. 핀테크 기업들도 컨소시엄을 통한다면 가능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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