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흉기로 협박하며 여권 뺏고 “끔찍한” 날들
자발적 범죄 가담하기 위해 간 이들도 있어[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했다가 이민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4명이 18일 전세기를 타고 국내로 송환된 가운데 민간 차원의 구조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중 해외에서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을 구조하고 안전하게 국내로 송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단법인 ‘한인구조단’이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구출된 5명의 구조 요청서를 공개했다. 그 안에는 “너무 끔찍했다”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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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A씨는 가정 불화 속에서 성장해 10대에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온라인 도박에 빠졌다고 한다. ‘해외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온라인 게시판 글에 속아 캄보디아로 향했다.
또 30대 B씨는 모친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컴퓨터회사에 취업하려고 캄보디아에 갔다가 자신을 호텔로 안내한 사람이 B씨의 목에 흉기를 들이댄 뒤 여권과 지갑을 빼앗아갔다고 밝혔다.
범죄단지로 끌려가기 직전 간신히 도망친 사례도 있었다. 49세 C씨는 ‘월 800만~1000만 원을 준다’는 해외 취업 모집 글에 속아 캄보디아로 갔으나 지인과 통화하다 실상을 알게 돼 끌려가기 직전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직도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또 코인 투자에 실패한 51세 D씨도 차명 휴대폰(대포폰)을 제공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갔다가 감금됐으나 간신히 탈출했고 가족 전체가 연락처를 바꾸기도 했다.
다만 캄보디아에선 지난해부터 한 달에 20~30명이 구조를 요청해 왔으나 신청자에 ‘숨김 없이 구조 요청서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아 실제 구조된 인원은 지난해 3명, 올해 4명에 그쳤다고 한인구조단은 밝혔다.
박호정 한인구조단 팀장은 “구조 요청자들을 보면 가정 환경이 불우하거나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려 이성적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특히 구조 요청서엔 캄보디아 입국 사유 및 위험에 빠진 경위 등을 써야 하는데 자발적으로 가담한 사례가 많기에 신청자가 많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번에 구조된 이들은 자신의 범죄사실을 고백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이들은 “처벌이 두렵지만 이곳 생활이 너무 끔찍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 “이성적 판단을 제대로 못해 취업사기를 당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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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이뤄진 청년취업사기는 고수익 일자리를 미끼로 청년들을 유인한 뒤 사기·도박 불법 콜센터 등에 강제로 가담하게 만드는 인신매매형 범죄다. 범죄 가담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감금 및 폭행·고문까지 자행하고 가족 등에게 연락해 돈을 송금하도록 협박하는가 하면 사망에 이른 경우도 있다.
구조 경로에 대해서 한인구조단은 “대상자가 도망친 뒤 도움을 요청하면 현지 한인회에 연락해 먼저 신변을 보호하게 한다”며 “감금 상태에서 구조 요청하는 경우엔 감시가 느슨한 틈을 이용, 한인회와 협력해 구출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조돼 한국으로 돌아와도 한국에서 지낼 곳이 없는 요청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숙식이 제공되는 일을 찾거나 고시원을 찾을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권태일 한인구조단 이사장은 “그동안 많은 한국인이 해외에서 실종되거나 고통받고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제는 단 한 명도 버려지는 국민이 없도록 정부 차원의 통합 구조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