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강 오를 기미 보이니 묶어버려”[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정부가 10·15 주택 시장 안정화 대책을 통해 규제지역으로 재지정한 서울 21개 구 가운데 8개 구는 아파트값이 하락한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연합뉴스는 정부 공인 시세 조사 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데이를 시계열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2022년 12월 대비 지난달까지 2년 9개월 새 서울 도봉구의 아파트값은 5.33% 떨어졌다.
정부는 2023년 1월 서울에서 강남권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등 4개 구를 제외한 21개 구를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했다.
그러나 이날부로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재지정된 이들 지역 가운데 38%에 해당하는 8개 구에서 33개월 동안 아파트값은 외려 하락했다.
도봉구에 사는 한 구민은 “도봉 집값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떨어졌는데 강남처럼 규제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부동산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강남 3구 십억씩 오를 때는 가만있더니 이제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 조금 오를 기미가 보이니 (규제지역으로) 묶어버린다”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영업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서울에서도 ‘한강 벨트’(한강을 둘러싼 지역)를 비롯해 집값이 많이 오른 곳만 규제지역으로 묶을 줄 알았는데, 서울 전역이 규제지역에 토허구역으로까지 묶인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며 “당분간 매매가 뚝 끊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기간 규제지역으로 유지된 송파구(29.96%)·서초구(23.33%)·강남구(20.56%) 등 강남권 3구는 아파트값이 20% 넘게 올랐다. 용산구는 14.9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에서는 이번 대책에서 규제지역으로 묶인 지역 간 양극화가 더욱 뚜렷했다.
10·15 대책에서 규제지역으로 재지정된 경기도 12개 지역 가운데 7곳(수원시 영통·장안·팔달구, 성남시 중원구, 안양시 동안구, 용인시 수지구, 의왕시)은 2022년 11월 규제지역에서 해제됐다.
부동산원 시세로 이들 지역은 2022년 10월 대비 지난달 기준으로 모두 아파트값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의왕의 하락폭(-14.93%)이 가장 컸다. 이어 ▲수원장안(-9.18%) ▲수원팔달(-8.72%) ▲성남중원(-8.71%) ▲수원영통(-8.55%) ▲안양동안(-6.50%) ▲용인수지(-4.94%)가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2023년 1월에 규제지역에서 해제됐다가 이번에 다시 규제지역으로 묶인 과천시(19.97%)와 성남시 분당구(13.07%)의 아파트값은 이 기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냈다. ▲성남시 수정구(6.46%) ▲하남시(4.27%) ▲광명시(1.80%)는 상대적으로 상승 폭이 작았다.
규제지역에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종전 70%에서 40%로 강화되고 총부채상환비율(DTI)도 40%로 축소돼 대출을 통한 주택 구입자금 마련이 어려워진다.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양도소득세 중과, 분양권 전매 제한, 청약 재당첨 제한 등 불이익도 받는다.
이들 규제지역은 갭투자 수요를 차단하고자 2년 실거주 의무가 발생하는 토허구역으로도 동시에 묶인다. 해당 지역 아파트 및 ‘동일 단지 내 아파트가 1개 동 이상 포함된 연립·다세대주택’이 대상이다. 지정 기간은 이달 20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다.
정부는 이번 서울·경기 규제지역 지정이 “최근 3개월간 주택가격상승률과 물가상승률 등의 정량적 요건과 과열·투기 우려 등의 정성적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파트값이 떨어진 지역까지 일괄·획일적으로 규제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자칫 부동산 시장 전체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국대 박합수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연합뉴스에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오르지 않은 지역까지 선제적으로 규제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과잉 규제”라면서 “부동산 거래가 급감하면 경제 활성화에도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