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신속화 시대…"거래소+법원 '투트랙' 대응이 새 생존법"

성주원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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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바른 최승환 변호사·윤기준 고문
올해 1~8월 상폐 법인수, 지난해 전체 육박
"사전 관리가 최선, 문제 발생시 비용 수십억"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2025년 상장폐지 제도 개선으로 기업들의 ‘퇴출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개선기간 단축과 심사단계 축소로 “한번 트리거가 발생하면 대부분 퇴출로 직행한다”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체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8월 상장폐지 법인 수는 50개로 지난해 전체(55개) 수준에 이미 육박했다.

이런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과거 ‘거래소 중심’ 대응에서 ‘거래소+법원 투트랙’ 전략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 상장폐지대응팀의 최승환(오른쪽) 변호사와 윤기준 고문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사전 관리가 최선…문제 터지면 수십억 비용 각오해야”

법무법인 바른 상장폐지대응팀의 최승환(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는 지난 1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감사의견 거절을 한번 받고 이를 적정으로 전환시키려면 수십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사전 관리가 가장 경제적”이라고 강조했다.

상장폐지 위기 대응 비용이 급증한 배경에는 엄격해진 감사 환경이 있다. 2018년 외부감사법 개정 이후 회계법인들은 법적 리스크를 의식해 보수적으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포렌식이 일상화되면서 기업들의 증빙 제출 부담도 크게 늘었다.

삼정회계법인(KPMG) 출신 공인회계사이기도 한 최승환 변호사는 “감사는 수사와 달리 기업이 적극적으로 증거를 제공해야 하는 절차”라며 “자료를 감추거나 선별 제출하면 그 자체로 범위제한 의견거절 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회계감사에서는 감추는 게 아니라 보여줘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흥미롭게도 실무에서는 “사고를 크게 친 회사들이 오히려 재감사 적정을 잘 받는다”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 변호사는 “큰 사고를 당한 경영진은 자세가 매우 겸손해지고, 상장폐지 시 법적 책임 부담을 느껴 철저한 ‘을(乙)’이 돼서 회사를 살리려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법원 가처분 환경도 변화…7년만에 인용 사례

상장폐지 대응 환경에서 최근 주목할만한 변화도 있다. 상장폐지 결정 법인들의 가처분 신청이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 건도 인용되지 않던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이 올해 들어 비덴트(121800), 버킷스튜디오(066410) 사례에서 잇따라 인용됐다.

최 변호사는 “과거에는 거래소가 상장폐지 과정에 충분한 기간을 주고 있어 법원도 인용할 이유가 없었지만, 최근 거래소 절차가 빨라지면서 법원이 절차적 적정성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해석했다.

법원은 거래소의 재량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행사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나 비례성 문제가 있을 경우 제동을 거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고 최 변호사는 전망했다. 현재 스타코링크(060240), 에이리츠(140910), 아이엠(101390) 등이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거래소는 개선계획 실효성, 법원은 증거와 절차”

변화된 환경에서 기업들은 거래소와 법원에 서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 변호사는 “거래소 대응에서는 개선계획의 실효성과 구체성이 핵심이지만, 법원 대응에서는 ‘해낼 수 있다’가 아니라 ‘해낸 것’만 의미가 있다”며 증거재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거래소 단계에서는 △감사의견 적정 전환 가능성 △지배구조·내부통제 보강 방안 △사업지속성 회복 시나리오를 정량지표와 일정표로 설계해야 한다.

법원 가처분에서는 △절차적 하자 입증 △개선기간 부족으로 인한 권리 침해 △가처분 기간 중 상폐사유 해소 가능성을 구체적 증거로 소명해야 한다. 특히 재감사 적정의견 확보나 핵심 자산 관련 소송 진행 상황 등 사후사정 변화를 적극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 발생 전 ‘평시 관리’가 가장 경제적

가장 효과적인 상장유지 대책은 ‘문제가 발생한 후 대응’보다 ‘평상시 관리’다.

한국거래소에서 24년간 근무하고 한국ESG기준원 부원장을 역임한 윤기준 법무법인 바른 고문은 “투자환기종목이나 관리종목 지정은 ‘상장폐지 예고 신호’이므로 이때부터라도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상장기업으로서 내부통제와 거버넌스 강화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결국 가장 경제적”이라고 조언했다.

최 변호사는 “과거처럼 거래소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거래소 심사 준비와 동시에 법원 가처분 요건도 미리 갖춰두는 ‘원스톱’ 설계가 새로운 표준”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바른 상장폐지대응팀 최승환(왼쪽) 변호사와 윤기준 고문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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