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차명계좌 세금 추징, 하자 중대·명백해야 부당이득"

성주원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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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단순 차명계좌 세금 추징 위법"…반환 소송
대법 "위법징수라도 하자 중대·명백해야 부당이득"
원심 파기환송…"당연무효 여부 추가 심리 필요"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차명계좌에 대한 세무당국의 추가 세금 징수가 위법하더라도,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처음부터 효력이 없음)에 이르러야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단순히 징수처분이 위법하다는 사유만으로는 곧바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확인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은행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1·2심, 은행 승소…“단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 아냐”

A은행은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금융거래를 하고,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일반 세율 14%를 적용해 소득세를 원천징수(소득 지급 시 세금을 미리 떼어 납부)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와 국세청 조사 과정에서 일부 계좌가 차명계좌로 드러났다. 남대문세무서장은 2019년 3월 해당 계좌들이 금융실명법 제5조의 ‘실명에 의하지 않은 금융자산’에 해당한다며, 차등세율 90%를 적용한 세액과 기납부세액의 차액인 약 5026만원을 추가 납부하라고 고지했다.

A은행은 이 금액을 납부한 뒤, 해당 계좌는 단순 차명계좌에 불과해 차등과세 대상이 아니라며 항고소송(행정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 없이 곧바로 민사소송으로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했다.

1심은 A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실명확인 절차를 거친 계좌는 금융실명법 제5조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출연자(실제 돈을 넣은 사람)와 예금명의자가 다른 차명계좌라도, 예금명의자를 배제하고 출연자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 합치가 있는 ‘합의 차명거래’가 아닌 이상 차등과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원천징수소득세는 자동확정방식 조세로, 소득 지급 시 납세의무가 성립·확정된다. 원천징수대상이 아닌 소득에 대한 징수처분은 부과처분 없이 이뤄진 것으로 당연무효이며, 국가는 이를 납부받는 순간 법률상 원인 없이 부당이득한 것이라고 봤다.

2심도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며 피고 대한민국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 “처분 하자 중대·명백해야 부당이득…원심 심리 미흡”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차명계좌 관련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나, 부당이득 성립 요건에 대한 법리 적용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조세의 과오납(잘못 내거나 더 낸 세금)이 부당이득이 되려면 과세처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여야 한다”고 밝혔다. 과세처분의 하자가 단지 취소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면, 과세관청이 스스로 취소하거나 항고소송으로 취소되지 않는 한 부당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과세처분이 당연무효가 되려면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천징수소득세의 납부고지는 확정된 세액의 납부를 명하는 징수처분 성격을 가질 뿐이다. 원천징수의무자가 납부고지에 따라 세액을 납부한 뒤 불복하려면, 하자가 중대·명백해 당연무효에 이르지 않는 한 곧바로 부당이득 반환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징수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으로 구제받아야 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계좌의 금융자산을 금융실명법 제5조 적용 대상으로 잘못 판단한 처분의 하자가 중대·명백해 당연무효에 이르러야 납부금이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며 “원심은 이 점을 심리하지 않고 납부 자체만으로 부당이득이 성립한다고 본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세무당국의 징수처분이 위법하다고 해서 곧바로 부당이득 반환청구가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차명계좌에 대한 금융실명법 해석은 원심이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부당이득 성립을 위해서는 처분의 하자가 ‘중대·명백’해야 한다는 요건을 추가로 심리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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