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허위사실공표'인데…정읍시장 무죄·李대통령 유죄, 왜?

성주원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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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반 허위사실공표 혐의' 유사사건
"투기 의혹" 제기는 의견, "골프 안 쳤다"는 사실
대법원, 정책 검증과 개인 행위 명확히 구분
정읍시장 판결 5개월 뒤 이재명 항소심이 원용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반대 결론 내려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는 무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유죄. 같은 공직선거법 위반 허위사실공표 혐의지만 대법원의 결론은 정반대였다. 이학수 정읍시장은 상대 후보를 공격했고,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은 자신의 의혹을 해명했다. 그런데 공격한 쪽은 무죄, 해명한 쪽은 유죄가 됐다. 대법원은 무엇을 기준으로 둘을 갈랐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두 사건, 어떻게 다른가

정읍시장 사건은 2022년 지방선거가 배경이다. 이학수 당시 민주당 후보는 당시 경쟁자였던 김민영 무소속 후보가 구절초공원 인근 16만7000㎡(약 5만평)의 토지를 보유한 상태에서 국가정원 승격을 공약으로 내건 점을 문제 삼았다.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했고, 국가정원 공약도 투기를 위한 것”이라고 TV 토론과 보도자료에서 주장했다. 실제로는 토지 대부분이 증여받은 것이었고, 사업 추진도 훨씬 나중이었다. 1·2심 모두 이 시장에게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1일 “의견 표명”이라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재명 대통령 사건은 2021년 대선 과정에서 터졌다. 대장동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고(故) 김문기 전 처장과의 관계가 쟁점이었다. 이 후보는 방송에서 “성남시장 때 몰랐다”고 했고, 특히 “국민의힘이 4명 사진을 조작했다”며 골프 동반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2015년 해외출장 중 함께 골프를 쳤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국토부가 혁신도시법 제43조 제6항으로 압박했고, 직무유기로 협박했다”고 국감에서 발언했으나 국토부는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3월 26일 이 대통령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5월 1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왜 이 둘을 비교하나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 정읍시장 사건 대법원 판결(2024년 10월)이 나온 지 5개월 만에 이재명 대통령 사건 항소심 판결(2025년 3월)이 나왔는데, 항소심 재판부가 정읍시장 판결의 법리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정책공약 검증 표현은 폭넓게 보호해야 한다”, “의견과 사실이 혼재됐다면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다의적 표현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정읍시장 판결을 인용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정읍시장 판결이 새 기준을 제시했다”, “이재명 사건 상고심에서도 무죄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같은 법리를 적용하면서도 사안을 명확히 구분해 정반대 결론을 냈다. 허위사실공표죄가 얼마나 섬세한 판단을 요구하는지 보여준 것이다.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5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법원이 그은 세 가지 경계선

①의견인가 사실인가


대법원이 가장 주목한 건 발언의 성격이었다.

정읍시장 사건의 “투기 의혹”은 의견 표명이다. 상대 후보가 5만평 토지를 보유한 상태에서 국가정원 승격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이고, “국가정원으로 사익을 추구한다는 의심”은 증거로 증명하기 어려운 의견이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반면 이 대통령 사건의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구체적 사실이다. “김문기와 해외출장 기간 중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것은 과거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진술이고, 증거로 증명 가능한 사실관계다. 실제로 2015년 1월 호주 멜버른 골프장에서 함께 친 사실이 확인됐다.

②정책 검증인가 개인 행위인가

정읍시장 사건은 정책 검증의 영역이다. 대법원은 “정책공약을 비판·검증하는 표현은 폭넓게 보호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토지 보유와 국가정원 공약을 연결해 이해충돌을 문제 삼는 것은 공약 검증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 사건의 골프 발언은 정책과 무관한 과거 행위다. 대법원은 “공적 해외출장 중 공식 일정에 참여하지 않고 대장동 특혜 의혹 관련 인물과 골프를 쳤는지는 후보자의 자질, 성품과 관련된 것으로 선거인의 공정한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백현동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혁신도시법 제43조 제6항의 의무조항”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직무유기로 협박받았다”고 했지만, 국토부는 해당 조항에 근거한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대법원은 “단순히 ‘법률에 의한 요구’라고만 했다면 의견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조항까지 특정한 것은 구체적 사실의 공표”라고 봤다.

③증명 가능한가

정읍시장 사건의 ‘투기 목적’은 주관적 동기로 증명이 곤란하다. 토지 취득과 사업 추진 시점에 시차가 있고, 상당 부분은 증여받은 것이었다. 이런 복합적 상황에서 “투기 의혹”은 의견의 영역이다.

이 대통령 사건의 골프 동반 여부는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하다. 2015년 1월 출장 중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대법원은 이를 명백한 허위로 판단했다.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 공직선거법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있던 지난 5월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비전형 노동자 간담회에 참석해 메모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후보자 발언은 일반인과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과 방어가 기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읍시장은 상대를 공격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의혹을 해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히려 이 대통령 사건에서 “후보자가 자신에 관한 사항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경우, 일반 국민이 공인을 비판하는 경우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호 수준이 같을 수 없다”고 밝혔다. 후보자의 자기 발언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판결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정책공약 검증 표현은 폭넓게 보호하되, 후보자의 구체적 과거 행위에 대한 허위 진술은 엄격히 판단한다. 의견과 사실이 혼재됐다면 전체를 봐야 하지만, 구체적 사실을 특정했다면 그 부분의 허위성을 따진다.

다만 반대의견(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다의적 표현을 피고인에게 불리하게만 해석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결국 ‘의견’과 ‘사실’의 경계, 정책 검증과 개인 행위의 구분은 여전히 사안별 판단이 필요한 영역으로 남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개입 의혹 관련 긴급현안 청문회’가 열렸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청문회에 불출석, 자리가 비어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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