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원칙적 금지…다른 주에서 재기소는 '가능'
佛·獨·日 등 대륙법계는 검사 상소권 '광범위 허용'
2·3심 무죄 유지율, 국무회의-사법연감 수치 달라[이데일리 성주원 송승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무죄 판결에는 상소 못하게 하는 나라가 많다”고 발언한 것이 국제비교법적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또 “검사가 무죄 사건을 무리하게 상소한다”며 현재 2심과 3심에서의 무죄 유지 비율을 언급했으나 이 또한 실제 통계와는 오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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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비교형사법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형사법 체계를 주로 비교하는 주요 선진국들의 상소절차를 분석한 결과, 검사의 무죄 판결 상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사실상 유일하고 영국이 부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헌법 수정 제5조의 이중위험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선고받으면 검사가 상소할 수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미국도 완전한 금지는 아니다. 배심원이 유죄평결을 했으나 재판장이 무죄판결을 한 경우 검사는 항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항소이유가 인정되면 배심원의 유죄평결이 적용된다. 또한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검사는 피고인의 무죄 여부를 다투는 상소를 할 수는 없어도, 법률상 쟁점과 관련해 통일된 해석을 위해 자문적 상소를 하는 것은 허용된다.
한국형사법학회장을 지낸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 무죄 판결에 대한 항소가 불가하지만, ‘이중주권원리’에 의해 해당 주 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도 동일한 사건을 연방 법원에, 또는 그 반대로 다시 기소할 수 있다”며 “각 주와 연방이 별개의 주권을 가진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법률적 오류에 대한 검사 항소를 허용했으며, 2003년 형사사법법(Criminal Justice Act) 제정 이후 중대한 범죄의 경우 사실 오류에 대한 항소도 가능해졌다.
캐나다도 검찰이 법률적 오류를 근거로 무죄 판결에 항소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는 캐나다 권리 및 자유 헌장의 이중위험금지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항소심을 원심 재판의 계속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륙법계 국가, 검사의 상소 제한 없이 허용
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 대륙법계 국가들은 모두 검사의 무죄 판결 상소를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일반상소는 상소개시에 대한 제한이 없고 동일사건에 대해 사실적 부분과 법률적 부분을 다시 심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 형사소송법 제296조 제2항은 “검사는 피의자·피고인에게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상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검사는 재판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한 항상 불복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독일의 항소심은 ‘제2의 사실심’으로서 새로운 사실과 증거 채택이 가능하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하급심에서의 무죄 또는 유죄판결에 대해 검사가 상소를 제기해 유죄 또는 더 무거운 형의 선고를 구하는 것은 헌법 제39조(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일본은 제1심·항소심·상고심을 ‘1개의 계속된 위험의 각 부분’으로 보기 때문에, 검사의 상소는 새로운 재판이 아니라 계속된 절차의 일부로 간주된다.
일본 형사소송법은 항소 이유로 “소송절차의 법령위반, 사실오인, 법령적용의 오류, 양형부당” 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항소심은 “사실적 및 법률적 문제에 걸쳐 사후적으로 심사하는 사실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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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은 사실 인정을 다시 판단하는 ‘사실심’이지만, 상고심은 법 적용의 오류만 다루는 ‘법률심’이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전통을 따라 검사의 항소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되, 상고심에서만 일부 제한하고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이 규정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피고인이 상고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 판례도 “검사는 사실오인 또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검찰은 2018년부터 ‘형사상고심의위원회 운영지침’을 통해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된 사건의 상고를 외부 전문가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지침은 △상고 인용 가능성이 낮은 경우 △번복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 △수사과정에서의 중대한 오류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상고를 포기하도록 규정한다.
항소심 역전율 15~17%…국무회의 언급 ‘5%’와 차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며 “1심에서 무죄 선고된 사건이 항소심(2심)에서 유죄로 바뀔 확률은 5%, 대법원 상고심(3심)에서 유죄로 바뀔 확률은 1.7% 정도”라고 말했다. 단순 계산하면 1심에서 무죄난 사건은 93% 이상 최종 무죄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검사들이 되도 않는 거 기소해서 국민들 고통주는 것 아니냐”며 “많은 국민들이 무죄를 받기까지 엄청나게 돈 들이고 고통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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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법연감에서 확인되는 형사사건 무죄 유지율은 2심 82~84%, 3심 95~96%로, 국무회의 언급 수치(2심 95%, 3심 98.3%)와 다소 차이가 있다. 사법연감 수치를 적용해 단순 계산하면 1심에서 무죄난 사건 중 대법원까지 최종 무죄가 유지되는 건 80% 수준이라는 뜻이다. 검사의 상소가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형사법학자 “3심제에서 피고인만 상소는 불합리”
검사 출신인 이창현(사법연수원 19기)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의 상소 제한은) 배심 재판을 하는 나라에서 일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며 “3심제에서 피고인도 상소할 수 있으면 검사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무죄 판결에 기계적으로 항소하고 상고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지만, 피고인만 할 수 있게 하는 건 안 된다”며 “배심 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일치 무죄의 경우 등으로 (제한 기준을) 구체화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에서도 이미 배심 재판 전원일치 무죄의 경우 항소심에서 증거 조사를 가능하면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검사의 상소 제한 여부는 재판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