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잇단 신용강등…고조되는 정치 불안
英 ‘미니예산’ 파장 부채 3700조 돌파
獨 에너지·노동·ICT 부진 ‘연속 역성장’
정부부채·저성장·정치불안 동시 악재
복지지출·긴축실패·인플레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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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주요국이 ‘부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미국은 의회 예산안 합의 불발로 ‘셧다운(정부업무 일시 중지)’이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재정중독에 빠진 프랑스는 내각 불신임등 정국 불안을 겪더니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영국은 부채비율이 치솟으며 지난 정부가 3년 전 발표한 감세안 이후 국채시장이 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은 급속한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연금 재정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자 고령층 은퇴를 자발적으로 늦춰 복지체계를 수술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부채와 저성장, 정치 불안이 맞물리며 서방의 재정위기 해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국제통화기금(IMF)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발표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 따르면, 202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 세계 국가채무 비율은 1948년 이후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IMF는 2029년 GDP 대비 전 세계 일반정부채무(General Government Gross Debt·D2) 비율이 10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D2는 국내에서 주로 사용하는 국가채무(D1: 중앙정부+지방정부·교육 지자체 부채)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채무를 더한 광의의 정부 채무다. 국제사회에서 정부 간 비교를 할 때 널리 통용되는 개념이다.
IMF는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금리가 상당히 상승해 증가하는 부채 상황 비용이 이미 예산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금융자산 가치가 계속 상승해 금융 안정성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일반 정부 부채) 비율은 2025년 125%에서 2030년 143.4%로 오를 전망이다. 프랑스는 올해 116.5%에서 2030년 129.4%로, 영국 103.4%에서 105.4%, 독일 64.4%에서 73.6%로 오를 예정이다. 미국·프랑스·영국 모두 GDP를 초과하는 부채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주요국 부채비율 상승은 전 세계 공공부채를 끌어올렸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6월 ‘부채의 세계 2025’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공공부채(일반정부 부채 기준)가 2024년 처음으로 100조달러(약 14경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세계 평균 정부부채 비율은 2005년 76.2%에서 올해 110.1%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셧다운·이민단속·군투입 여파 속에서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전역 주요 도시에서는 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가 수천 건 열렸다. 미국 LA 시청 인근에서 지난 열린 대규모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 현장. [UPI] |
美 ‘셧다운 3주째’…“하루 21조원 경제 손실”
미국은 연방정부의 기록적인 부채 급증과 재정적자 확대, 정치권의 예산안 합의 불발에 따른 셧다운 장기화 등으로 복합 위기 상황에 처했다.
셧다운은 여야가 새해 예산안 합의에 실패해 연방정부 일부 기능이 중단되는 상황을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과 경제에 제한적 영향을 주지만, 장기화될 경우 타격과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미 재무부는 의회 예산안 합의 불발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이 3주째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에 하루 150억달러(약 21조3000억원) 규모의 비용을 발생시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셧다운이 미국 경제의 ‘근육’을 갉아먹는 상황”이라며, 지속될 경우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 위축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인공지능 산업을 포함한 투자 붐이 시작됐지만, 지금 우리를 가로막는 유일한 요인은 연방정부 셧다운”이라고 언급했다.
근본적으로 셧다운 사태의 중심에는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자리한다. 대규모 감세를 골자로 한 이 법은 연구비·이자 비용·설비투자 공제를 소급 적용하고 한도를 대폭 확대해 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저소득층 의료 지원과 식품 보조 예산은 크게 줄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재정적자를 감안해 감세분을 복지예산 축소와 관세 수입 등으로 충당하려고 한다. 그러나 세수 감소폭이 지출 삭감보다 훨씬 커 재정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2025회계연도 재정적자는 1조7000억달러(약 2432조4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대비 약 410억달러(2.2%) 감소한 수치이지만, 역사적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5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로 강등하면서 “지난 10년간 미국 정부의 부채는 지속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급격히 증가했다”며 “감세정책에 따른 세입감소와 복지지출 증가가 재정 여력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8대 노동조합이 주도한 전국 총파업의 일환으로 렌에서 열린 시위현장. 한 참가자가 ‘시위 탄압 = 민주주의 위기’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AFP] |
‘빚더미’ 프랑스, 긴축 실패로 신용등급 연쇄 강등…정치 불안↑
프랑스는 서유럽 주요국 중 가장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졌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대규모 지출에 더해 고령화로 인한 연금 부담, 사회보장비 증가, 에너지 전환 비용,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까지 겹치면서 재정적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났다.
IMF에 따르면 프랑스의 정부 부채 비율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98.1%에서 올해 116.5%로 뛰었다. 2030년에는 129.4%까지 상승해 사실상 그리스(130.2%)와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재정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복지 개혁과 지출 삭감, 혹은 증세뿐이지만 프랑스의 조세 부담률은 이미 유럽 최고 수준이다. 추가 증세는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긴축 시도마저 잇따라 좌초됐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7일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 피치(Fitch)도 지난달 하향조정 했고, DBRS 모닝스타 역시 ‘AA(high)’에서 ‘AA’로 내리면서 프랑스는 한 달 사이 세 번의 강등을 맞았다.
S&P는 “프랑스 정부가 내년 적자를 충분히 줄이지 못할 위험이 있다”며 “재정 건전화 속도는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주 의회에 제출된 2026년 예산안에도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은 혼란에 빠졌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의 사임 이후 임명된 가브리엘 르코르뉘 총리는 “2023년 연금 개혁을 다음 대선 이후로 미루겠다”며 “2028년 1월까지 정년 연장은 없다”고 발표했다. 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연금 개혁의 사실상 중단 선언이었다.
르코르뉘 총리는 취임 27일 만에 사임했다가 나흘 만에 재임명됐고, 마크롱 대통령도 연금 개혁 연기를 공식화했다. 그는 “모든 법안은 의회 표결을 거치겠다”며 야권과의 협치를 모색 중이다.
르코르뉘 내각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7%로 낮추고, 300억유로(약 49조7600억원) 규모의 지출 절감안을 추진 중이다. 르코르뉘 총리는 “재정적자는 반드시 5% 이하로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의 의심은 깊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국채 금리는 로레알·에어버스·악사 등 주요 프랑스 기업의 회사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형성됐다. 부채 비율은 그리스(152%)나 이탈리아(138%)보다 낮지만, 국채 금리는 오히려 그리스보다 높다. 이는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를 그리스보다 더 위험한 자산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채 혼란’ 영국, ‘미니 예산’ 사태 3년 지나도 국채시장 불안 여전
영국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재정 지출을 대거 늘리면서 2023년 말 정부 부채 비율이 100.4%까지 상승했다. 게다가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안인 ‘미니 예산’ 발표로 국채 시장에 혼란이 와 보수당 정권이 붕괴했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파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영국 국채 수익률은 1998년 이후 최고치에 근접했으며,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으로 장기 차입 비용도 상승세다. 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률 상승은 투자자 불안을 키우고 있다.
오는 11월 발표될 가을 예산은 시장 신뢰 회복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은 정부의 차입·지출 계획이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2022년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리브스 장관은 지난 11일 “영국의 재건”을 강조하며 향후 3~4년간 보건과 국방 분야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망명 신청자 지원과 해외 원조는 지출 삭감 대상에 포함됐다. 전체적으로는 2조파운드(약 3700조원)를 웃도는 지출이 예상돼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란은행(BoE)은 지난해 8월 이후 다섯 차례 금리를 인하해 기준금리를 4.0%로 낮췄다. 그러나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한때 5.70%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5.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니 예산’ 사태 당시 기록했던 5.1%를 웃도는 수치다.
현재 영국 국채 시장 불안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를 크게 웃도는 3.8%에서 고착돼 있으며, 국민보험료와 최저임금 인상, 에너지·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추가 상승 위험이 존재한다. 둘째, 경제 성장 부진 속에 정부가 일상 지출까지 차입에 의존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복지개혁 후퇴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2025~2026 회계연도 첫 다섯 달(4~8월) 누적 재정적자는 838억파운드(약 158조원)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당시인 2020년 이후 최대 규모다. 정부 전망치(724억파운드)를 15.7% 웃돌고, 전년 같은 기간(676억파운드)보다 24% 증가했다.
재정 악화의 핵심 요인은 공공부문 임금 인상이다. 전체 임금 상승률은 둔화됐지만, 보너스를 제외한 공공부문 임금 상승률은 5.7%로 민간 평균(4.8%)을 상회했다. CS 벤카타크리슈난 바클레이스 CEO는 “정부가 지출을 억제해야 하며, 특히 공공부문 임금 억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제조업 강국’ 독일,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산업 기반 흔들
독일 경제가 높은 에너지 비용, 경직된 노동시장,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ICT 경쟁력 약화, 에너지 전환 비용 증가 등 복합적 요인이 겹치며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 기업 폐업이 잇따르면서 ‘제조업 강국’이라는 독일의 상징적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다.
유럽 최대 수출국인 독일은 2023년과 2024년에 이어 올해도 성장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2023년 -0.3%, 2024년 -0.2%로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0.4%에서 0.0%로 하향 조정돼 사실상 ‘제로 성장’이 예고됐다. 독일경제전문가위원회는 “독일 경제가 미국의 관세 및 재정정책 등 외부 변수에 한층 취약해졌다”고 분석했다.
독일 경제부에 따르면 2030년까지 노동인구는 2010년 대비 630만명 감소하고, 2035년에는 숙련 노동자 700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력 감소는 생산성 하락뿐 아니라 연금 재정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EU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연금 지출 비율은 GDP 대비 11.6%로 EU 평균(12.2%)보다는 낮지만, 빠른 고령화로 인해 재정 부담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정치 구조도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어렵게 한다. 독일은 다당제 기반의 연립 내각 체제이기 때문에, 각 정당의 정책 노선이 엇갈리면 정책 추진이 지연되거나 좌초되기 쉽다. 지난해 해체된 ‘신호등 연정’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2021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자유민주당(FDP), 녹색당(Greens)과 손잡고 구성한 이 연정은 각 당의 상징색인 빨강·노랑·초록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러나 재정·기후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자유민주당 소속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이 법인세 인하, 사회복지 예산 삭감, 노동시간 연장 등 친기업 정책을 밀어붙이자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강하게 반발했다. 두 당은 긴축과 감세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하며 복지 유지와 환경정책 강화를 요구했다. 결국 타협은 무산됐고, 신호등 연정은 출범 3년 만에 붕괴했다.
독일 정부는 “인력 감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령층의 자발적 은퇴 연기를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세제 실험에 나섰다. FT에 따르면 정부는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하는 근로자에게 월 2000유로(약 330만원)까지 소득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정책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총선 공약으로, ‘활동 연금제’라 불린다. 숙련 인력이 노동시장에 남아 있도록 유도해 노동력 부족과 연금 지출 증가를 동시에 완화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메르츠 총리는 최근 집권 기독민주당(CDU) 전당대회에서 “오늘날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우리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다”며 복지제도 전면 개편을 예고했다.
다만 소득세 감면이 오히려 세수 감소로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해당 제도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경우 연간 8억9000만유로(약 1조5000억원)의 세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세금 면제 대상은 약 28만5000명의 은퇴자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고용 확대와 소비 증가로 세수 손실이 상쇄될 것”이라며, 특히 연금 지출 절감 효과가 나타날 경우 재정 건전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