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대 아파트 보유 부총리 “보유세 높이면 못견뎌”
30억대 소유 국토부 차관 “집값 떨어지면 사라”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거센 비판 삼가” 부탁
20일 마포구의 한 부동산에 매물 정보가 써붙어 있다.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에 따라 20일부터 서울 전 지역과 과천, 분당 등 경기 12개 지역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다. <연합> |
[헤럴드경제=서정은·홍승희 기자] “미국처럼 재산세를 (평균) 1% 매긴다고 치면, (집값이) 50억이면 1년에 5000만원씩 (보유세를) 내야 하는데, 웬만한 연봉의 반이 날아가면 안 되지 않느냐(집을 팔지 않겠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 정책을 통해 나중에 집값이 안정되면 그 때 (집을) 사면 된다”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이재명 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이 연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작 본인들은 수십억원대 부동산 자산을 보유해 놓고 이번 10·15 부동산대책으로 실수요자들의 진입 통로를 차단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9일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이 유튜브 채널 ‘부읽남TV’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책사’로 알려진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은 최근 유튜브 채널인 ‘부읽남TV’에 출연해 뭇매를 맞았다. 이 차관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와 대출 규제 등을 골자로 한 10·15 부동산 대책을 설명하며 “만약 집값이 유지된다면 그간 내 소득이 오르고, 오른 소득이 쌓인 이후 향후에 집을 사면 된다”고 말했다. 또 “어차피 기회는 돌아오게 돼 있으니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 없지 않나”라고도 덧붙였다.
이 차관은 그러면서 “당장 몇천만원 혹은 1억~2억원이 모자라 집을 사지 못해 아쉬워하는 분들은 집값이 우상향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런다”며 “현 시점에서 사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도 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되자 2000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당신들은 수십억짜리 집 사는 건 되고 저희는 왜 안되나요”, “비아파트가 그렇게 좋으면 차관님도 거기에 사셔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여론의 목소리는 이 차관의 배우자가 ‘갭투자(세 끼고 매매)’에 나선 정황이 확인되면서 더 커지고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9월 수시공개자 재산 현황에 따르면 이 차관은 56억6291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 가운데 이 차관의 배우자는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을 지난해 7월 33억5000만원에 매입한 뒤 3개월 뒤 14억80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매매가의 절반을 임차보증금으로 활용한 ‘갭투자’에 나선 것이다.
성남시 분당구는 10·15대책에서 토허구역으로 지정돼 지금은 세 끼고 매매가 불가하다. 해당 아파트는 현재 실거래가 기준으로 40억원에 달해, 불과 1년여 만에 6억5000만원가량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 |
50억원대 재산을 보유한 구 부총리의 ‘보유세’ 발언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구 부총리는 지난 16일(현지 시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처럼 1% 재산세를 준다면 50억원은 1년에 5000만원씩 내야 한다”면서 사실상 못버티고 고가주택 소유자들이 팔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공교롭게도 구 부총리 자신도 50억원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데다가 갭투자 정황이 있어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구 부총리 배우자는 강남구 개포동에 15억원 상당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2013년 이 아파트가 재건축이 진행될 당시 매수해 2018년 철거 시까지 실거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거주하지 않고 시세 차익을 누리면 ‘투기’라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 방향과는 정 반대의 행보다. 현재 구 부총리 배우자가 소유한 아파트의 호가는 55억원 전후로 전해진다.
정부도 여론 악화를 예상한 듯 정책 발표 직후부터 부동산 전문가들을 물밑으로 접촉해 부정적 목소리가 커지지 않도록 소통하고 있다.
복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국토부 고위 관료들이 이번 10·15 대책의 취지, 향후 파장, 규제의 불가피성 등을 수차례 설명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국토부에서 이번 대책의 취지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 왔다”며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추가 규제의 불가피성이 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번 대책이 예상보다 규제가 세고, 여론 반응이 좋지 않은 만큼 전문가로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해석해줘야할지 ‘무언의 압박’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관련 대책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엇박자 문제로도 옮겨붙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구 장관의 보유세 인상 주장에 대해 논란이 일자 신중론을 드러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19일 “보유세 인상을 포함한 부동산 문제는 국민적 감정이 굉장히 집중되는 과제로 정부가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도 “아직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가 내년 지방선거 전선으로 확대되면서 정부-여당 간 온도 차를 드러낸 셈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세제를 건드리지 않고 집값을 잡겠다고 한 정부가 오히려 세제를 제외한 모든 것을 다 건드려버린 꼴”이라며 “실수요자의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만드는 게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