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대 총력 결집’ 방침 등 내각 출범
30일 2박3일 방한…한일회담 등 예측
독도 등 과거사 강경…한일관계 분수령
“안보환경 고려 한미일 3국 협력 강화”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 [로이터] |
[헤럴드경제=서영상·문혜현·김지헌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1일 일본 총리직에 취임할 것으로 확실시 되는 가운데 강한 안보 노선과 우경화 성향으로 알려진 내각의 등장으로 동북아 정세와 한일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내다보인다. 10일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다카이치는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두 참석하면서 한국·미국·일본·중국 정상이 모두 경주에서 만나 그 주목도는 더욱 높아질 예정이다.
고(故) 아베신조 전 총리의 핵심 측근으로 ‘아베노믹스’ 후계자이자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온 다카이치 총재가 전면에 나서며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우는 경우에는 한일관계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재는 21일 오후 제219회 임시국회에서 치러지는 총리 지명선거를 통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잇는 새 총리로 선출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를 대비해 축하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과거사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밝혀온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나서며 이시바 시게루 총리 시절 유지되던 한일관계는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공을 들여 복원한 셔틀외교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카이치 총재는 우선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독도에 대해서도 일본의 영유권을 꾸준히 주장한 인사다.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달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의 날’ 행사에 내각 장관이 당당히 참석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면서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차관급 정무관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보내왔으나, 다카이치 총재는 이를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전날 자민당이 ‘강경 보수 성향’의 일본유신회와 연정수립에 합의하며 다카이치 내각은 더욱 보수화·우경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1999년부터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과 협력 관계를 이어왔으나, 공명당이 지난 10일 연정 이탈을 선언한 이후 새로운 상대를 물색했고 주요 정당 중 가장 우익 성향으로 평가받는 유신회와 20일 정식으로 연정 수립에 합의한 상황이다.
다만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지난달 24일 자민당 총재 후보 공개토론회에서 “한일관계를 심화시켜 나가겠다”면서 “안보 환경을 고려해 한미일 3국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일 동맹은 유지하되 미일 무역합의에 불평등한 부분이 있다는 자국 내 여론이 높은 상황 속 한국과 일본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미국에 대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더불어 이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라고 표현하며 “오른손(과거사)으로 싸워도 왼손(안보,경제 등 협력 사안)은 잡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유연한 입장인 만큼 한일관계가 기회와 긴장이 공존하는 새로운 국면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를 고려한 듯 다카이치 총재는 이전 봄과 가을 예대제(例大祭·제사)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해왔던 것과 다르게 이번 가을 예대제에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보수층 결집을 위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왔다면 총리 선출이 확실시 되면서 외교적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진행될 한일 정상회담은 한일관계의 추후 방향성을 나타내는 중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카이치 총재는 총리 취임 이후인 30일부터 2박 3일간 일정으로 방한을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다카이치 총재는 APEC을 통해 국제 무대에 일본을 대표할 수 있는 러더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정성과 신뢰성을 강조할 것”이라면서 “한일 정상 간에도 이같은 분위기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면 일본이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해 초대 총리를 맡은 이토 히로부미 이후 제 104대 총리이자 사상 첫 여성총리가 된다.
다카이치 총재는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친임식과 각료 인증식을 마친 뒤 이날 밤 새 내각을 정식으로 출범시킬 예정이다.
총리 지명선거는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이 각각 실시하며, 결과가 다를 경우 중의원 투표를 우선시한다. 중의원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사실상 당선이 확정되고,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2명이 단순 다수제인 결선 투표를 치른다.
자민당과 유신회의 중의원 의석수는 각각 196석, 35석이다. 과반인 233석에는 2석 부족하다. 하지만 무소속 의원 4명가량이 다카이치 총재에게 투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 1차 투표에서 결과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