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직원 중 정규직 200명 감원
6월엔 만성적 인력 부족에 돌연 파업
돈 되는 보석류만 노리는 절도 범죄도 심각
“박물관 절도 지난해 9건→21건 급증”
BBC “역사 가치 훼손돼도 판매 대금은 상당”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으로 사라진 마리 아멜리와 오르탕스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 귀걸이 한 짝. [AFP]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지난 19일(현지시간)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서 허술한 박물관 보안 상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알려진 루브르 박물관이 4인조 괴한들에 의해 단 7분 만에 뚫리자 프랑스 내부에서는 역사적 유산과 문화재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AFP·AP 통신 등에 따르면 범인들은 루브르 개장 시간 30분 뒤인 9시30분께 박물관에 침입, 프랑스 왕실 보석류가 전시된 ‘아폴론 갤러리’에서 보석류를 훔쳐 달아났다. 다만 이들은 보석류 9점을 훔쳐냈고, 도주하던 중 1점을 범행 현장 근처에 떨어뜨리고 갔다.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외제니 황후의 왕관. 4인조의 괴한들이 19일(현지시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9점의 보석류를 훔쳐 달아났으나, 이 왕관은 도주 중 인근에 떨어뜨려 부서진 상태로 발견됐다. [AFP] |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범인들이 떨어뜨리고 간 보석은 나폴레옹 3세 황제의 부인 외제니 황후의 왕관으로, 부서진 채로 발견됐다. 루브르 홈페이지에 나온 설명에 따르면 이 왕관은 다이아몬드 1354개와 에메랄드 56개로 장식된 것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아폴론 갤러리에서 도난당한 보물 8점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문화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도난당한 보석류는 ▷마리 아멜리와 오르탕스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 귀걸이 한 짝 ▷마리 루이즈 황후의 에메랄드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 ▷성유물 브로치 ▷유제니 황후의 왕관과 대형 코르사지 브로치 등이라면서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문화 유산”이라고 문화부는 전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으로 사라진 마리 아멜리 여왕의 보석류들. [AFP] |
프랑스 노동계에선 박물관의 인력 감축이 보안 약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노총(SUD)은 이날 성명을 통해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안 직무가 파괴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프랑스 24에 “지난 15년간 루브르 박물관의 전체 인원 2000여명 가운데 정규직 200명 규모의 인력이 줄었다”며 “물리적 감시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루브르박물관은 지난 6월 사전 예고 없이 돌연 문을 닫았다. 박물관 직원들이 넘쳐나는 관람객 수 대비 인력 부족 등에 항의하며 집단 파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19일(현지시간) 루브르 박물관에서 센강쪽으로 향하는 외벽에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다리차가 놓여있다.[EPA 연합뉴스] |
노조원 투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파업’을 강행한 데 대해 루브르박물관 직원 노동조합 ‘CGT-문화’ 대변인 크리스티안 갈라니는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고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당시 노조는 감당할 수 없는 인파, 만성적 인력 부족, 열악한 근무환경 등을 문제 삼았다. 지난 15년 동안 박물관에서 일자리 약 200개가 사라지면서 매표소, 경비 등 전 분야에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는 게 직원들 주장이다.
다비드 벨리아르 파리 부시장도 엑스(X·옛 트위터)에 “이번 절도는 직원들이 보안 허점에 대해 경고한 지 불과 몇 달 후에 일어났다”며 “왜 미술관 경영진과 문화부는 이 경고를 무시했는가”라고 비판했다.
박물관에 소장된 고가의 전시품을 표적으로 삼은 절도 범죄가 점차 늘어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 BBC는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두 건의 박물관 도난 사건은 예술품 조직범죄의 대담함이 커지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내무부가 보석이 도난당한 루브르 박물관의 강도 사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창문을 법의학 팀 구성원들이 조사하고 있다. [로이터] |
프랑스 경찰 문화재밀거래단속국(OCBC)는 AFP통신에 “박물관은 점점 더 표적이 되고 있다”며 “박물관의 보안은 은행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OCBC에 따르면, 박물관 절도 건수는 지난 2015년 31건으로 정점을 찍고 2023년에 9건으로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서 절도 건수는 21건으로 반등했다.
BBC는 “범죄조직은 절대 전시되거나 팔릴 수 없는 초유명 회화들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그들은 현금화가 가능한 물품, 즉 보석류를 선호한다”며 “왕관 등 도난된 부석류는 쉽게 분해돼 여러 조각으로 팔릴 수 있다. 원래 유물의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더라도 판매 대금은 상당할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 2021년 5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방문객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
앞서 지난달 파리 자연사박물관에선 60만유로(약 9억9000만원) 상당의 금 샘플이 도난 됐다. 이달 초에는 리모주 시의 한 박물관에서 650만유로(약 107억6000만원)로 추정되는 도자기류가 도난당했다. 도난된 전시품들은 암시장에서 쉽게 처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BBC는 짚었다.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1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다. 이탈리아인 빈센초 페루자가 훔쳐낸 모나리자는 2년여 만에 루브르로 돌아왔고, 이 사건으로 모나리자의 유명세는 더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