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성장의 시대 종말 경계…2025년 노벨경제학상 선정 이유는 [홍길용의 화식열전]

홍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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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15. 오후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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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늘 성장해야 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에서 설정하는 기본 전제다. 경제성장률이 모든 경제 지표의 기본인 이유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구 감소가 진행 중이거나 예상된다. 인구가 줄면 생산도 감소하는게 보통이다. 전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 전제가 진리는 아니다. 질문을 던져본다.

“왜 경제는 계속 성장해야 할까?”

“경제는 어떻게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엘 모키어(Joel Mokyr) 노스웨스턴대 교수, 필리프 아기옹(Philippe Aghion) 콜레주드프랑스 교수, 피터 하윗(Peter Howitt) 브라운대 교수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탐구했다.

1인당 GDP 역사적 추이


이들을 선정한 노벨상 위원회는 ‘정체(stagnation)’가 인류(경제)의 오랜 표준이었다고 지적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경제 성장은 거의 제자리에 머물렀다. 가끔 중요한 발명이 나와 생활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성장은 이내 멈췄다. 그런데 지난 200년간 인류는 가장 오랜 기간, 가장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동시에 인류는 다시 한번 100년만의 패권 전쟁에 돌입했다. 19세기 초 영국과 청나라의 대결,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충돌, 그리고 다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지난 200년간 이뤄낸 ‘혁신’ 주도 경제 성장을 올해 수상자들이 과학적으로 설명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상이 혁신을 화두로 던진 셈이다. 이론적으로 인구가 줄어도 단위 생산성이 커지면 경제는 성장할 수 있다. 관건은 어떻게 혁신할 지다.

올들어 13일까지 중국 증시(홍콩H지수)는 27.6% 상승하며 미국 증시(S&P500) 상승률 12.7%를 앞서기 시작했다. 중국 증시가 미국 증시를 연간 단위로 추월한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최근 둔화됐지만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줄인 결과다. 중국이 기술 혁신을 통해 높은 성장률을 지속한다면 한 세대 안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중국 보다 높은 수준의 혁신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성장의 대결은 곧 혁신의 경쟁이다.

200년 성장의 비밀, ‘유용한 지식’의 탄생


경제성장을 이끈 주요한 혁신들


최근 200여 년간 ‘성장의 시대’가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된 출발점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다. 이후 인류는 연평균 2%에 가까운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한 세대 만에 소득이 두 배로 뛰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지분의 절반을 인정받은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 교수는 ‘유용한 지식(useful knowledge)’이라는 개념으로 산업혁명의 본질을 설명했다. 그는 지식을 ‘왜’ 작동하는지를 아는 ‘명제적 지식(propositional knowledge)’과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처방적 지식(prescriptive knowledge)’으로 나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두 지식이 분리돼 있었다. 장인들은 경험으로 무언가를 만들 줄은 알았지만, 그 원리는 몰랐다. 반면 과학자들은 세상의 원리를 탐구했지만, 실제 생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쉽게 말하면 ‘명제적 지식’은 발견, ‘처방적 지식’은 발명 정도가 될 듯 하다.

모키어 교수는 16~17세기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이 두 지식이 서로 교류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대기압에 대한 과학적 이해(발견)이 증기기관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발명)로 이어지는 식이다. 산소가 용선의 탄소 함량을 줄인다는 화학적 원리가 제철 기술의 혁신으로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지식의 선순환이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었다는 설명이다.

변화를 용인한 사회, 계몽주의가 만든 ‘관용의 제도’


발견과 발명 그리고 혁신


물론 산업혁명 이전 유럽에서도 혁신적 발명은 종종 등장했다. 대부분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막혀 사장됐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산업과 일자리를 위협했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막았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유럽 사회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영국 의회와 같은 새로운 정치 제도가 등장하면서, 특정 기득권이 일방적으로 변화를 막을 수 없게 됐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타협하고 조정하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키어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고,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설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창조적 파괴’를 수용하는 사회적 관용성이다.

계몽주의가 가져온 ‘변화에 대한 수용성(acceptance of change)’이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손실을 사회가 감내하고, 장기적 이익을 위해 단기적 고통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아무리 뛰어난 과학 지식이 있어도 산업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벨상 위원회는 “창조적 파괴가 만들어내는 갈등을 건설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혁신은 기존 기업과 이익집단에 의해 차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장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사회가 변화를 용인하고, 패자를 배려하면서도 승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갖출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는 힘, ‘창조적 파괴’의 역동성


혁신과 창조적 파괴


결국 혁신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다. 이 개념은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가 1942년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처음 제시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혁신이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임을 강조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에 나머지 절반을 기여한 필리프 아기옹 교수와 피터 하윗 교수는 1992년 공동 논문을 통해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정교한 수학적 모델로 만들어내며 현대 경제학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들의 모델은 혁신의 역동성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더 나은 제품이나 생산방식을 개발한 기업은 시장의 승자가 되어 막대한 이윤(독점 이윤)을 누린다. 그 순간, 다른 기업들은 그 승자를 뛰어넘기 위한 또 다른 혁신에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은 낡은 기술을 대체하고, 기존의 시장 강자는 도태된다. 혁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창조적’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것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파괴적’이다.

아기옹과 하윗의 이론은 표면적으로 안정돼 보이는 경제의 이면에 얼마나 역동적인 파괴와 창조의 과정이 숨어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매년 10%의 기업이 사라지고 그만큼 새로운 기업이 생겨난다. 이들은 이러한 역동성이야말로 성장의 엔진이라고 말한다.

두 교수의 모델에서 핵심은 ‘균형’이다. 기업이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이 너무 길면 혁신 동기가 약해지고, 너무 짧으면 투자 유인이 사라진다. 정부는 특허 제도와 경쟁 정책을 통해 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가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자에게 기회를 주는 문화를 갖추는 것이다.

미국은 반독점법이 가장 엄격한 나라다.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강제로 기업을 해산시키기도 했다. 1911년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과 아메리칸토바코(American Tobacco), 1945년 NBC, 1982년 AT&T(American Telephone and Telegraph)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거대 IT 기업들을 대상으로 반독점 소송이 제기되거나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토대에서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혁신 생태계, 즉 실패를 용인하고 새로운 도전자에게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구글, 아마존, 테슬라 같은 기업들이 기존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를 달리 표현하면 끊임없는 도전이다.

AI 패권 경쟁, ‘창조적 파괴’를 용인하는 자가 승자


성장을 이뤄내는 혁신의 필요조건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중국산 수입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핵심 소프트웨어 및 AI 칩 수출 통제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미국이 중국보다 그리 앞서 있지 않다”며 AI 경쟁의 치열함을 경고했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서며 기술 패권 전쟁은 격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뭘까? 자본을 많이 투입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다면 승자가 될까? 그렇다면 연구개발(R&D) 예산을 더 많이 쓰는 기업이, 정부 보조금을 더 많이 받는 나라가 승자가 되어야 한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최근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미국과의 격차는 상당하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이 경쟁의 승패가 단순히 기술력이나 자본의 크기로만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기옹과 하윗이 강조했듯, 진짜 승부처는 ‘창조적 파괴’를 얼마나 용인하는가에 있다.

두 사람의 설명이라면 중국은 ‘창조적 파괴’에 있어 미국에 뒤쳐질 수 있다. 공산당이라는 ‘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혁신도 통제의 대상이다. 알리바바의 마윈이나 텐센트의 마화텅 같은 기업가들이 정부의 압박을 받는 모습은, 기득권(이 경우 정치권력)이 혁신을 통제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은 창조적 파괴의 매력으로 전세계 인재와 자본을 유치하며 성공을 이뤄냈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세모글루(Kamer Daron Acemoğlu) 교수는 바로 이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의 비밀을 밝혀 수상했다.

하지만 아세모글루 교수는 수상 직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이민 제한 정책이 미국의 혁신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개방성과 다양성이 미국 성공의 핵심이었는데, 그것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다.

AI 시대의 승자는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나 더 빠른 칩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경쟁하고, 낡은 것이 새것에 자리를 내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저성장 한국, ‘혁신 시스템’을 다시 짜라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혁신 주도 성장’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더 나아가, 창조적 파괴를 용인하는 사회적 관용성을 갖추고 있는가?

모키어 교수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처방적 지식’ 즉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발명해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에는 능했지만, 세상에 없던 기술과 원리를 만들어내는 ‘명제적 지식’ 창출에는 취약했다.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는 많이 했지만, 미래를 열어갈 근본적인 과학기술과 지식 창출 시스템에 대한 투자는 인색했다.

무엇보다 ‘창조적 파괴’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다.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기존 산업의 기득권과 충돌해 각종 규제에 가로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타다와 쏘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혁신 기업이 성장하기보다는 기존 대기업의 틀에 안주하거나, 해외로 떠나는 ‘코리아 엑소더스(Korea exodus)’가 심화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창조적 파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경영권 위협’으로만 받아들이는 문화도 문제다. 주주의 정당한 권리 행사마저 ‘적대적 M&A’로 낙인찍는 풍토에서는 창조적 파괴가 작동할 수 없다.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핵심이다. 국내 주식투자자들이 미국 증시 투자에 더 적극적이고, 상법 개정안 등이 이뤄지며 외국인의 한국 증시 투자가 늘어난 것은 그 방증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와,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도 창조적 파괴가 어려운 생태계가 있지는 않을까?

결국 해답은 ‘혁신 생태계’ 전반을 재설계하는 데 있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기초과학과 ‘명제적 지식’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설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리더십이다. 변화를 가로막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공정한 경쟁의 룰을 바로 세워야 한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는 지금,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낄 수퍼 새우’가 될지, 아니면 독자적인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 제3의 길을 갈지는 우리가 얼마나 ‘창조적 파괴’를 용인하는 사회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계몽주의 시대 유럽이 그랬듯,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기회를 주는 관용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성장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혁신’이라는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성공 방식에 대한 과감한 작별과, 미래를 향한 ‘창조적 파괴’를 감내할 용기다. 그리고 그 파괴의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건설적으로 풀어낼 사회적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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