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 관점서 보면 굉장히 잘 팔고 잘 산 사례"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이 지난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를 활용해 고가 아파트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가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갭투자를 원천적으로 막은 가운데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사다리는 딱 끊고 본인은 갭투자로 시세를 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 차관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에 있는 '판교밸리호반써밋' 전용면적 84㎡(13층)를 2017년 8월 6억4511만원에 매수했습니다. 이후 이번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6월 7일 11억4500만원에 매도했습니다.
특히 이 집을 파는 방식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 차관은 해당 집은 팔면서 자신은 이 집의 세입자로 남았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런 매매 방식은 '주전세' 혹은 '주인 전세'라고 부릅니다. 매도인이 집을 팔고 세입자로 남는 방식입니다. 매매와 전세계약을 동시에 체결해 매수자는 전세보증금을 뺀 만큼만 지급하게 됩니다.
집을 파는 입장(이상경 차관)에선 세입자로 계속 거주하면서 주거 안정을 누리는 것과 동시에 시세 차익을 실현하고, 매매대금에서 전세보증금을 뺀 차액만 매도인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도 장점입니다. 집을 사는 입장에선 자금 부담을 줄인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전세보증금을 뺀 차액만 지급하기 때문에 '갭투자'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판교밸리호반써밋을 매도하기 전 2024년 7월 이 차관의 부인 한모씨는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는 '판교푸르지오그랑블' 전용 117㎡를 33억5000만원에 매수했습니다. 전세 보증금 14억8000만원을 뺀 18억7000만원으로 매입한 셈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갭투자입니다. 이 차관 본인은 판교밸리호반써밋에 전세로 거주하면서 백현동에 있는 더 넓고 가격대가 높은 집을 갭투자로 사뒀습니다. 판교푸르지오그랑블은 같은 면적대는 지난 6월 40억원에 손바뀜하면서 신고가를 기록했습니다. 호가는 42억원 수준입니다. 현시점 기준으로 6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거둔 셈입니다.
이 차관은 집을 사고파는 데 나오는 세금 측면에서도 철저하게 거래했습니다. 판교밸리호반써밋을 가지고 있었던 2024년 7월 판교푸르지오그랑블을 매수해 일시적 2주택 방식을 활용해 세금을 줄였습니다.
일시적 2주택 세제 혜택은 기존에 집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집을 샀을 경우 종전 주택을 3년 이내 처분하면 종전 주택에 대한 양도세와 기존 주택에 대한 취득세를 감면받습니다. 원래 이 제도는 '갈아타기'를 원하는 실수요자들이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이 방식을 통해 이 차관은 기존 집 6억4511만원에 매수해 11억4500만원에 매도한 데 따른 차익에 대해선 양도소득세를 따로 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4년 7월 성남시 분당구는 비규제지역이었기 때문에 판교푸르지오그랑블을 매수하는 데 따른 취득세는 3%가 적용됐습니다. 만약 규제지역이었다면 2주택 취득에 따른 중과(8%)까지 피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차관의 방식을 두고 투자 관점에서 "정말 잘 팔고, 잘 샀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활용한 것"이라면서 "주인 전세를 활용해 갭투자자에게 집을 팔고, 세입자로 살면서 갭투자로 상급지의 집을 사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가 막힌 타이밍에 갈아타기를 잘한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이 차관이 활용한 주인 전세, 갭투자 등은 10·15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후론 할 수 없는 매매 기법입니다. 이를 두고 실수요자들은 날 선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 실수요자는 "본인은 쓸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써 집을 사두고는 서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했고, 또 다른 실수요자는 "앞과 뒤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차관은 한 언론에서 "투기를 목적으로 한 갭투자와는 성격이 다른 거래였다"며 "전세로 살다가 처음으로 분양받은 집이 고등동 아파트였고, 이후 전문직인 아내의 자산이 많아 대출 없이 백현동 아파트를 구매했다. 일시적으로 1가구 2주택이 되자 고등동 아파트를 매도하려고 내놨으나 당시 전고점 대비 30% 정도 매매가격이 내려간 데다 팔리지도 않으면서 입주 시점을 맞출 수 없게 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당시 백현동 아파트 전세 시세가 16억원이었는데 시세를 맞추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14억원대로 전세 세입자를 들였다"며 "이후 고등동 아파트가 팔렸지만 백현동 아파트 전세 기간이 끝날 때까지 갈 곳이 없어서 다시 고등동 아파트에 전세로 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차관은 한 유튜브에서의 발언으로 논란이 됐습니다. 그는 "지금 집을 사려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면서 "시장이 안정되면(집값이 내리거나 혹은 유지만 되더라도) 그 기간 내 소득이 오르고, 소득이 쌓인 후에 그때 가서 집을 사면 된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는 이 차관의 발언을 두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여론이 악화하는 가운데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이 차관의 부동산 발언에 대해 사과에 나섰습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식 사과를 하며 수습에 나선 모습입니다.
한 최고위원은 "이 차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렸다"면서 "당 최고위원이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 최고위원의 사과는 당의 공식 입장"이라며 "정책 기조가 흔들리거나 본질이 아닌 것을 공세를 받을 수 있는 언행에 대해 각별히 자제해야 한다는 게 당의 입장이고, 국토위 국감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한 지적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