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 끝" vs "숨 고르기"
금 현물가, 장중 6.3% 하락
12년 만에 '최대 낙폭'
美기업 호실적·美中 해빙 기대
'안전 자산 선호' 열기 약해져
국제 銀 현물가도 7.6% 급락
백금값은 하루만에 5% 빠져
'금값 행보' 놓고 전망 엇갈려
일부 "투기 식으면 급락" 경고
BoA·골드만은 가격 상승 예측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던 금값이 하루 만에 6% 이상 급락했다. 12년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랠리가 끝났다’는 시각과 ‘건강한 조정’이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현물 가격은 한때 전날보다 6.3% 내린 트로이온스당 4082.03달러로 떨어졌다. 2013년 이후 하루 기준 최대 하락률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금 현물 가격은 장이 끝나기 전 낙폭을 약간 줄여 4093.18달러에 마감했다. 금 선물 가격도 급락했다 12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는 트로이온스당 4109.1달러를 기록했다. 전장 대비 5.7% 하락했다.
대표적 금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 골드 셰어즈’(GLD)도 이날 6% 이상 하락했다. ‘반에크 골드 마이너스’(GDX) 등 금 채굴 기업 ETF도 10% 안팎의 급락세를 보였다. 금광기업도 타격을 입었다. 애그니코이글마인스, 앵글로골드아샨티, 뉴몬트, 올라마이닝 등의 주가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올해 금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 3월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한 뒤 이달 초 4000달러를 넘어섰고, 불과 두 달 사이 25% 이상 급등했다. 전날에도 현물 기준으로 온스당 4381달러 선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서만 60% 가까이 상승했다.
그동안의 급등에 대한 경계감에 미·중 무역 갈등 완화 기대 등이 겹쳐 이날 금값이 급락했다. 미국 기업들이 3분기 호실적을 이어가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회복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주요 금 매수 주체 중 하나인 인도 증시가 최대 힌두교 축제 ‘디왈리’를 맞아 휴장해 유동성이 부족해진 것도 이날 하락의 요인이 됐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금속정보업체 키트코메탈의 짐 위코프 선임 애널리스트는 “이번 주 들어 개선된 시장의 위험선호 심리가 귀금속에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 은 현물도 이날 같은 시간 전장 대비 7.6% 급락한 트로이온스당 48.49달러에 거래돼 낙폭이 더욱 컸다. 백금 가격도 5% 급락했다.
금값의 단기 흐름을 가늠하려는 투자자는 24일 발표 예정인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주목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단)으로 주요 경제지표 발표가 중단됐다. 하지만 미 노동통계국은 당초 발표 예정 시점인 오는 10월 15일보다 9일 늦춰진 24일 CPI 지표를 발표한다고 공지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28~29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CPI는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은 이자와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가 하락하면 금값이 상승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중장기 금 시세 전망을 두고선 전문가들의 예측이 엇갈린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는 17일 SNS에 “금이 밈 자산(유행에 따라 가치가 급등락하는 자산)이 됐다”며 투기적 열기가 식으면 금값이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11일 기준 투기적 투자자의 금 선물 투자 계약 규모는 26만6700건(계약당 금 100트로이온스)으로 많은 수준을 유지했다. 금값이 흔들리면 이익을 실현하려는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가격이 급락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정이 일시적인 가격 하락이라는 분석도 있다. 수키 쿠퍼 스탠다드차타드 애널리스트는 “이번 하락은 기술적 조정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달 사이 금 투자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이번 조정을 통해 시장의 내구성이 시험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이 이번 금값 급락 전 내놓은 전망에서도 향후 금값 전망치는 엇갈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내년 금 목표가를 트로이온스당 5000달러로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도 각국 중앙은행의 수요와 향후 Fed의 통화 완화를 근거로 내년 목표가를 4900달러로 내놨다. HSBC와 UBS는 내년 전망치를 각각 3950달러, 3900달러로 예상했다.
김주완 기자/뉴욕=박신영 특파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