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 핵심 부품
중국행 원천 차단돼
글로벌 투자금도 막혀
내부에선 공급과잉發
기업 도미노 파산 우려
인도 급부상도 변수
중국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그 앞에 ‘꽃길’만 놓인 것은 아니다. 중국 ‘테크 굴기’를 막으려는 미국의 강력한 제재와 ‘레드테크’(중국의 최첨단 기술)의 텃밭인 내수시장 침체 등을 극복해야 해서다. 인도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의 부상도 중국에 새로운 도전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시간이 갈수록 높이고 있다. 중국 테크 굴기가 미국 경제는 물론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다. 미국은 자국 기업은 물론 자국 기술이 들어간 제품의 중국 수출도 막고 있다. 반도체 미세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게 대표적 예다. ‘블랙웰’ 등 엔비디아가 만드는 최신 인공지능(AI) 가속기가 중국 수출금지 리스트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전기자동차와 배터리의 수입을 막는 것도 중국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미국은 중국 자본이 25% 이상 들어간 합작법인을 ‘제한대상외국기업’(PFE)으로 규정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적용 대상에서 뺐다. 전기차 세액공제(최대 7500달러)인 만큼 사실상 퇴출인 셈이다. 유럽도 미국에 동조해 중국 전기차 관세율을 최대 45%로 끌어올리는 등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제재는 서방국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유럽을 잃으면 중국 테크 굴기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투자자금의 중국행이 막히는 것도 중국에는 부담이다. 미국이 중국을 뺀 채 첨단 기술 관련 기술 표준을 세우면 중국 업체에는 직접적인 타격이 된다.
과잉 투자와 내수 부진은 중국 테크 굴기의 또 다른 암초다. 첨단 기술에 대한 무한 경쟁을 장려하는 중국식 산업정책으로 인해 전기차, 태양광, 로봇 분야에서 상당한 규모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기업들의 ‘도미노 파산’이 현실이 되면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내수 침체와 맞물려 가속도가 붙던 중국 테크 굴기가 주춤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국은 부동산시장 침체와 높아지는 청년 실업률 등으로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부상은 중국 첨단 기술 굴기의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인도는 정보기술(IT)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인력,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얽혀 이들의 차세대 생산기지를 잇따라 유치하고 있다.
김종문 KIC중국 글로벌혁신센터장은 “중국의 기술 굴기가 빛을 발하려면 내수 회복을 통한 수요 창출, 글로벌 신뢰 구축, 혁신 생태계의 질적 성장 등을 이뤄내야 한다”며 “레드테크의 지속 가능성은 기술 문제를 넘어 중국 경제 모델의 전환과 맞물린 과제”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