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서 원유 받아 중간과정 생략하고 에틸렌 생산
국내 석화기업들은 '긴장'
석화 구조조정 변수로 떠올라
지난 21일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 한가운데, 여러 갈래의 배관이 얽힌 거대한 구조물들이 올라서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9조2580억 원을 투입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현장이다. 약 90만㎡(약 27만평)의 부지, 축구장 125개 크기로 조성되고 있는 샤힌프로젝트 단지는 왠만한 소형 도시 크기다. 원유에서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한국 최초의 TC2C(Trans Crude to Chemicals·원유에서 석화제품으로) 공장을 위해 사우디는 2023년 초부터 이례적인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고, 결실을 맺기 직전이다. 샤힌 프로젝트 현재 공정률을 85%. 내년 7월 시운전을 시작하고 즉각 에틸렌 기준 연간 180만t의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현영 현대건설 샤힌프로젝트 현장실장은 “TC2C 공정시설은 이미 건설이 완료됐고, 납사를 에틸렌 등으로 쪼개는 스팀크래커 설치도 마무리 단계”며 “내년 6월 배관연결 작업 마무리까지 끝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건 에쓰오일 관계자들 뿐이 아니다. 울산내 다른 석화 기업 관계자는 물론 울산 지역 공무원들까지 주기적으로 공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석화산업 제품의 생산단가를 대폭 낮출 TC2C라는 국내 최초의 공법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제품 생산의 시작은 원유부터다. 원유를 수입해 고온으로 끓이면 LPG, 휘발유, 경유, 등유 등과 함께 납사(나프타)가 나온다. 전체 원유중 납사의 비중은 20%다. 일반적인 석유화학 기업은 이 납사를 공급받아 NCC라는 설비를 통해 에틸렌 등을 만든다.
TC2C는 휘발유 생산과정의 부산물로 납사를 뽑는게 아니라, 거꾸로 납사를 위주로 휘발유 등을 부산물로 뽑아내는 공정이다. 원유에서 60% 이상의 납사를 뽑아낸다. 중간 공정도 생략돼 원유를 투입하면 에틸렌까지 연결돼 생산되는 구조다. 에쓰오일은 TC2C 공장의 막대한 초기 투자비는 사우디의 ‘오일머니’로 메꿨다. 사우디 아람코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유를 수입하는 점도 강점이다.
에쓰오일은 기존 NCC 공정대비 가격경쟁력을 20~30% 이상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샤힌의 손익분기점을 t 170~180달러 선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 다른 NCC공장의 손익분기점은 240~250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샤힌프로젝트가 울산 지역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석유화학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 석화 단지내 다른 기업들의 사정은 좋지 않다. 실적 악화로 재투자는 이미 중단됐다. 울산 석화단지 내에는 유지·관리 투자를 하지않아 페인트칠 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설비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실적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석유화학제품 생산량을 25% 이상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중이다.
생산을 줄여야 하는 시장 입장에선 홀로 ‘확장’을 외치고 있는 에쓰오일의 등장은 변수가 될 수 밖에 없다. 현재 울산내 NCC 보유한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의 에틸렌 기준 생산규모는 각각 90만t, 66만t. 가격(20~30%↓)도 싸고 용랑(180만t)도 더 많은 샤힌프로젝트가 더해지면 시장 판도가 바뀔 수 밖에 없다. 특히 대한유화는 그동안 납사를 에쓰오일로 부터 공급받아왔는데 앞으로는 다른 수급처까지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에쓰오일은 구조조정과 별개로 샤힌프로젝트를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석화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중국과의 경쟁조차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샤힌의 가동은 단순 증설이 아니라, 석유화학 생태계의 경쟁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