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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에 가상자산 시장이 급락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거래소의 USDT는 5,700원을, USD1은 10,000원을 넘어서는 이례적인 가격 폭등이 관찰됐다. 이를 두고 ‘스테이블코인이 스테이블하지 않았다’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는 현상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데이터상 스테이블코인의 달러 페깅은 10일 한때 0.5% 급등했을 뿐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왜곡된 것은 오직 원화 가격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폭증한 시장가 매수 주문을 받아 줄 시장조성자가 없어서였다. 10일 비트코인이 폭락하면서 알트코인은 수십 퍼센트 급락했고, 이로 인해 ‘업토버’와 ‘산타 랠리’를 기대하며 상승에 베팅했던 국내 레버리지 투자자들 해외 거래소에서 대거 마진콜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제 청산을 피하기 위해서는 증거금을 추가로 예치해야 하는데, 증거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확보하려는 현금 매수 수요가 단기간에 폭증한 것이다.
문제는 이 폭발적인 매수 수요를 받아줄 매도 물량이 매우 부족했다는 점이다. 수요와 공급의 기본적인 원리에 따라 공급이 부족한 스테이블코인의 원화 가격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평시라면 1,500원만 넘어가도 외면받을 가격이지만, 수십 퍼센트의 자산 하락과 마진콜 압박에 직면한 투자자들은 가격을 불문하고 급히 시장가 매수에 나섰을 것이다. 테더 5,700원, USD1 10,000원이라는 가격은 이러한 시장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과로 분석된다.
이러한 매수·매도 불일치로 인한 시장 왜곡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바로 ‘시장조성자(Market Maker)’와 ‘유동성공급자(Liquidity Provider)’ 제도다. 이들은 매수·매도 양방향에 촘촘히 호가를 제시해 투자자의 원활한 거래를 지원하고 실질적인 거래 비용을 낮추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미 나스닥 등 주요국 증시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이며, 우리나라 증시에도 제도화되어 있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인 IBIT 또한 SEC에 제출한 서류에 시장조성자(MM-BD, MM-crypto)를 사용한다고 명시했다. 코인베이스, 바이낸스와 같은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역시 유동성 공급자 제도를 통해 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는 공식적인 시장조성자가 없다. 자본시장법이 증권의 모집·매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안정조작이나 시장조성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달리,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는 해당 조항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 원화마켓은 내국인 개인만 이용할 수 있어, 법인 또는 금융기관이 시장조성자로서 활동할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고질적인 ‘김치 프리미엄’이나 ‘역프리미엄’ 현상 역시 정식 시장조성자들이 활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이 해외와의 자본 이동을 통해 차익거래를 하기에는 제약이 많아 가격 왜곡을 정상화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합법적으로 대규모 자본을 운용하는 기업이 국내외 시장과 외환시장에서 활동한다면 가격 왜곡 해소와 수익 창출이 모두 가능하지만, 이 또한 막혀있다.
과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MM(Market Maker, 시장조성자)’은 ‘펌프앤덤프’를 일삼는 시세조종 세력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는 제도가 없는 곳에서 무자격 업자들이 ‘시장조성자’를 참칭하며 시장을 교란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본시장처럼 가상자산 시장에도 합리적인 시장조성자 제도를 도입해 선량한 투자자를 보호하고, 무자격 업자들의 불법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
시장조성은 특이하거나 이상한 행위가 아닌, 선진 금융시장의 ‘상식’이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상장빔’, ‘김치 프리미엄’ 문제도 시장조성자 제도화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언젠가 허용될 국산 비트코인 현물 ETF와 현재 법제화가 논의 중인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적 유통에도 시장조성자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는데 5.7원으로 급등하거나 0.3원으로 급락하는 경우,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은 물론 외환시장까지 흔들 수 있다. 테라·루나의 몰락도 탈중앙화거래소에서 유동성이 잠시 제거되었을 때 발생한 테라USD 가격 급락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산 가격의 급등락은 올바르게 작동하는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 없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루라도 빨리 제도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