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원 규모 가스처리시설 인프라 사업
사업비 70% 이상 대출, '레버리지 극대화' 구조
국민연금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추진 중인 초대형 셰일가스 개발 사업에 3억 달러(약 4200억원)를 투자한다.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 셰일가스 인프라에 참여하며 대체투자 다변화 전략이 본격적으로 중동까지 확장됐다는 평가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블랙록 산하 글로벌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GIP)가 주도한 컨소시엄에 참여해 아람코의 자푸라 가스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 형태로 자금을 투자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중순부터 해당 프로젝트를 검토해왔으며, 지난 7월께 대체투자위원회를 거쳐 투자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푸라 가스 프로젝트는 사우디 동부 자푸라 지역에서 진행되는 1000억 달러(약 142조원) 규모의 초대형 셰일가스전 개발 사업으로, 비(非)석유 에너지 산업 확대를 추진하는 사우디 정부의 핵심 전략이다. 미국 외 지역에서 추진되는 셰일가스 프로젝트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아람코는 이 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자국 가스 생산량을 2021년 대비 60% 이상 늘려 글로벌 천연가스 공급망 내 입지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GIP 컨소시엄은 자푸라 가스전의 핵심 인프라 중 하나인 가스 처리시설 및 관련 중간시설에 투자하기 위해 결성됐다. 전체 사업비는 110억 달러(약 15조6000억원)에 달하며, 아람코가 핵심 자산의 소유권을 유지한 채 개발·운영 권리를 20년간 컨소시엄에 임대하고, 컨소시엄은 이를 다시 아람코에 재임대하는 '리스앤리스백(lease-and-leaseback)' 구조로 설계됐다. 이는 에너지 인프라 자산에 자주 활용되는 구조로, 소유권은 유지하되 현금흐름을 외부 투자자와 공유하는 형태다.
아람코는 이를 위해 자푸라 가스 처리시설 등을 자회사 JMGC(Jafurah Midstream Gas Company)에 이관하고, 해당 법인의 지분 49%를 GIP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나머지 51%는 아람코가 보유한다. 사업비는 에쿼티 20억~30억 달러, 나머지는 대부분 대출로 조달했다. 80억 달러 이상의 대출 대부분이 중국 국책 금융기관을 통해 조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IB 업계 관계자는 "아람코의 신용도와 사업 안정성을 감안해 레버리지를 극대화한 구조"라며 "국민연금 등 에쿼티 투자자는 건설·운영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장기 고정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GIP 컨소시엄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싱가포르투자청(GIC), 아부다비 무바달라, 바레인 인베스트코프, 사우디 국부펀드(PIF) 등 중동·아시아 주요 국부펀드가 대거 참여했다. 사우디 정부가 자금력을 갖춘 자국 내외 기관투자가를 전략적 파트너로 끌어들여 가스 산업 기반을 강화하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이 사우디 정부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간 북미·유럽 중심으로 인프라 포트폴리오를 운용해왔으나, 최근 안정성과 장기현금흐름이 보장되는 중동 실물 자산으로 외연을 넓히며 글로벌 인프라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에 힘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전통 자산의 기대수익률 저하와 기금 규모 거대화에 대응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기금운용 대체투자 포트폴리오(사모펀드·부동산·인프라) 가운데 작년 말 기준 인프라 투자 잔액은 전년 대비 24% 증가한 54조1000억원으로 전체 기금의 약 4.4%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