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싼데 진짜라니"…전세계 발칵 뒤집은 MZ 결혼 반지 [글로벌 머니 X파일]

김주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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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1. 오후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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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130년 다이아몬드 왕국
실험실 제조 보석의 공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의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실험실에서 배양된 다이아몬드, 이른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Lab-Grown Diamond·LGD)의 수요가 증가하면서다. 한 세기 넘게 글로벌 시장을 지배해 온 다이아몬드 카르텔이 몰락하고, 첨단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기술 혁명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7일 보츠와나의 국가신용등급을 'A3'에서 'Baa1'으로 강등했다. 아프리카 지역의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수출에 국가 경제를 의존해 온 나라다. 무디스는 "다이아몬드 산업이 구조적 침체했다"고 지적했다.

한때 세계 원석 다이아몬드 거래의 약 80%를 독점했던 드비어스는 올해 상반기까지 최근 2년간 누적 35억 달러의 자산 상각을 단행했다. 드비어스의 모기업 '앵글로 아메리칸'는 드비어스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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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원석 다이아몬드 시장의 몰락은 LGD의 등장이 배경이다. LGD는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성장시킨 진짜 다이아몬드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화학적·물리적·광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성분을 지닌다. 탄소 원자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경도, 굴절률, 반짝임(파이어) 등도 똑같다. 전문가용 감정 장비로만 원석과 구분할 수 있다.

주얼리 보험사 브라이트코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기준 미국 약혼반지 구매에서 LGD가 차지하는 비중은 45%를 넘어섰다. 결혼 전문 플랫폼 더 넛의 올해 보고서도 미국 약혼 커플의 52%가 LGD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추세는 예물 시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글로벌 주얼리 기업 시그넷의 2026년 회계연도 2분기(2025년 8월 2일 종료) 실적 발표에 따르면, LGD의 패션 주얼리 침투율은 14%로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이는 LGD가 예물 시장을 넘어 일상적인 패션 아이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LGD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격 경쟁력이다. 이달 기준, 표준적인 품질의 1캐럿 천연 다이아몬드 소매가가 약 4200달러 수준이다. 반면 물리적·화학적으로 동일한 LGD는 1000달러 이하에 거래됐다. 70~90%에 달하는 압도적인 가격 격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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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D의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에 직접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했다. 짐니스키 글로벌 원석 다이아몬드 가격 지수에 따르면, 천연 다이아몬드 원석 가격은 2022년 2월의 역사적 고점 대비 약 35% 폭락했다.

가격 장벽이 낮아지면서 소비자는 절약한 비용으로 더 크고 화려한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는 '빅 스톤' 트렌드도 나타났다. 브라이트코 보고서에 따르면, LGD 약혼반지의 평균 중심석 크기는 2019년 1.31캐럿에서 올해 2.45캐럿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도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드비어스가 수십 년간 구축해 온 '작지만 영원한 가치'라는 신화 대신, 소비자는 다이아몬드의 크기(캐럿)를 예산 내에서 극대화해야 할 제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희소성을 지닌 자산에서, 제조 원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일종의 첨단 공산품이 됐다는 의미다.

LGD의 성공 이면에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가치관 변화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윤리적이고 지속이 가능한 소비에 대한 열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LGD 마케팅의 핵심은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대표되는 천연 다이아몬드의 어두운 역사와 대비되는 '분쟁 없는' 생산 과정이다. 미국 보석 체인 'CD 피콕'의 스티븐 홀츠만 부회장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 고객이 매우 많다"고 밝혔다.
지난 9월 공개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2488캐럿의 원석 다이아몬드 '모츠웨디'가 골프공 옆에 놓여 있다. 지난해 보츠와나의 카로웨 광산에서 채굴됐다. AFP연합뉴스
LGD가 주얼리 시장에서 일으킨 혁신은 곧바로 천연 다이아몬드 공급망의 최상층부를 강타했다. 130여년간 시장을 독점해 온 '드비어스 제국'은 존폐의 위기에 내몰렸다. '다이아몬드의 축복'을 누려온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원의 저주'라는 악몽과 마주하게 됐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라는 슬로건으로 다이아몬드의 신화를 창조했던 드비어스는 자신의 영원성을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LGD의 공세 앞에 드비어스의 독점적 지위와 가격 통제력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드비어스의 위기는 재무제표에 드러난다. 모회사인 앵글로 아메리칸은 다이아몬드 사업부의 가치를 연이어 대폭 상각하며 시장의 냉혹한 평가를 인정했다. 올 7월 실적 발표에서 앵글로 아메리칸은 최근 2년간 누적 35억 달러의 손상차손을 인식하며 드비어스의 장부 가치를 약 49억 달러로 재평가했다.

올 상반기에만 1억 89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LGD와의 경쟁으로 인해 천연 다이아몬드의 미래 현금 창출 능력이 영구적으로 훼손되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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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 아메리칸은 결국 칼을 빼 들었다. 지난 5월 앵글로 아메리칸은 드비어스 지분 85%를 매각하거나 분사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앵글로 아메리칸의 던컨 완블라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매각 방식에 대해 "전형적인 1, 2차 라운드 매각 프로세스가 아닐 것"이라며 선정된 소수의 입찰 후보와 보츠와나 정부가 참여하는 직접 협상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 세기 동안 이어져 온 다이아몬드 카르텔 시대의 실질적인 종언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앙골라 국영 다이아몬드 회사인 엔디아마가 소수 지분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계 자금 등 중동 자본의 관심설도 흘러나오고 있다.보츠와나는 '아프리카의 모범생'으로 자원의 축복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국가로 꼽혔다. 그러나 LGD 쇼크는 모든 성공 신화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다이아몬드라는 단일 자원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은 이제 한 국가 경제 전체를 질식시키는 올가미가 됐다는 분석이다.

보츠와나 경제는 다이아몬드 시장의 침체와 함께 추락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이 나라의 재정 수입의 약 30%, 외환 수입의 75%를 차지하는 절대적인 경제 기둥이었다. 글로벌 수요 감소와 LGD의 확산으로 다이아몬드 수출이 급감하자 보츠와나 경제는 지난해 -3%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9월 보고서에서 "다이아몬드 생산의 추가적인 감소로 보츠와나 경제가 약 1%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디스는 최근 "2025년 경제가 추가로 6%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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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감소는 곧바로 정부 재정의 고갈로 이어졌다. 보츠와나의 경상수지는 2023년 GDP 대비 1.5% 흑자에서 지난해 4.2% 적자로 악화했다. 정부의 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7.6%에 달했다. 이런 재정 위기는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8월 보츠와나 정부는 의약품 부족 사태로 인해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다이아몬드 수익 감소로 국가의 필수 공공 서비스 제공 능력마저 훼손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 벼랑 끝에 몰린 보츠와나 정부는 생존을 위해 자국의 자원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공격적인 '자원 민족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드비어스와의 100년 동맹에 균열을 내고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증폭시켰다.

가장 큰 변화는 판매 방식의 전환이다. 지난 2월 최종 타결된 새로운 10년 판매 계약에 따라, 보츠와나 국영 다이아몬드 회사(ODC)는 드비어스를 거치지 않고 원석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ODC가 확보한 데브스와나(드비어스와 보츠와나의 합작사) 생산량 비중은 기존 25%에서 즉시 30%로 상향 조정했다. 계약 기간 내에 40%까지 확대하는 구조로 설정됐다.LGD 관련 기술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도 부상했다. 다이아몬드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는 이유는 현존하는 어떤 물질보다도 뛰어난 물리적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LGD 생산 기술의 발전은 이 '이론상의 최강자'를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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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광대역 갭(UWBG) 소재로 분류되는 다이아몬드는 현재 반도체 시장의 주류인 실리콘(Si)은 물론, 차세대 전력 반도체로 주목받는 실리콘 카바이드(SiC)나 질화갈륨(GaN)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다이아몬드의 열전도율은 약 2200W/mK다. 실리콘(150W/mK)의 약 15배, 구리(400W/mK)의 5배에 달한다. 이는 반도체 소자에서 발생하는 열을 매우 효율적으로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이아몬드는 실리콘보다 30배 이상 높은 전도 견딜 수 있다. 더 작고 얇은 소자로도 고전압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력 반도체의 소형화와 고효율화를 가능케 한다. 다이아몬드의 강한 탄소 결합 구조는 우주 공간이나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고방사선 환경에서도 반도체 소자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보장한다.

이런 물리적 특성 덕분에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기존 소재로는 구현이 불가능했던 극한 환경 및 고성능 애플리케이션에 최적화돼 있다. 주요 응용 분야로는 ▲AI 데이터센터 및 고성능 컴퓨팅(HPC)의 열 관리 솔루션(히트스프레더) ▲차세대 6G 무선 통신용 고주파 전력 증폭기 ▲항공우주 및 국방 분야의 내방사선 전자 시스템 등이다.

다이아몬드의 잠재력은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하지만 크고 결함 없는 단결정 다이아몬드 웨이퍼를 저렴한 비용으로 균일하게 생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LGD 주얼리 시장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수백만 캐럿에 달하는 보석급 LGD에 대한 수요 증가는 이른바 '화학 기상 증착(Chemical Vapor Deposition) 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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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생산 속도, 품질, 비용 효율성을 극적으로 개선하는 결과를 낳았다. 소비자가 더 큰 결혼반지를 원했던 욕망이 반도체용 다이아몬드 웨이퍼 생산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해 준 셈이다.다이아몬드 반도체 상용화 경쟁의 선두 주자로는 일본이 꼽힌다. 일본의 스타트업 '오쿠마 다이아몬드 디바이스'는 홋카이도 대학과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의 상업용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장을 후쿠시마현 오쿠마초에 건설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초기 목표는 후쿠시마 제1 원전 폐로 작업에 투입될 로봇과 센서에 탑재할 내방사선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미국 역시 다이아몬드 기술을 미래 국방 및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전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관련 분야에 전략적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캘리포니아의 스타트업 '아카시 시스템즈'다. 이 회사는 질화갈륨(GaN) 반도체를 다이아몬드 기판 위에 성장시키는 'GaN-on-Diamond' 기술과 AI 데이터센터의 열 문제를 해결하는 '다이아몬드 냉각'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럭셔리 시장 역시 LGD의 거센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국내 3대 백화점은 ALOD, 어니스트서울 등 LGD 전문 브랜드를 경쟁적으로 입점시키며 LGD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인 한국은 차세대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도 SiC와 GaN 기반 화합물 전력 반도체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팀은 지난해 고온·고압이 아닌 표준 대기압(1기압)에서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한국공학대학교 연구팀도 이종성장 단결정 다이아몬드 웨이퍼 위에 E-모드와 D-모드 트랜지스터를 동시에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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