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캄보디아 '120억 사기꾼 부부' 석방 첩보 입수

김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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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14. 오후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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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9개월째 '깜깜'

사기꾼 부부, 2월 체포 후 6월 석방
법무부, 7월 말 재체포
경찰 "최근 다시 석방 추정"
현지 경찰과 뒷돈 거래 의심

캄보디아는 부인 "6월 석방 맞지만
7월 재체포 이후엔 아냐"
강씨(32)와 안씨(29) 부부가 체포 직후 대사관 직원에 전송한 자신들 사진. 인터폴 수배 상태로 지난 2월 붙잡혔던 이들 부부는 로맨스스캠 수법으로 100여명으로부터 120억 상당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독자제공

지난 2월 캄보디아에서 체포됐다가 석방된 인터폴 수배자 부부가 법무부의 재체포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시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의 부패와 외교적 갈등이 얽히면서 한국 경찰은 이들을 9개월째 송환받지 못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범죄인 인도를 거부하고 있어 일선 수사관들은 현지에 체류중인 범죄자들에 대한 인터폴 수배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울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강모씨(32)·안모씨(29) 부부가 최근 풀려나 프놈펜 시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첩보를 10월 초 입수하고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이들은 캄보디아 거점 범죄단지에서 활동하며, 데이팅앱에서 만난 피해자들에게 "같이 투자 공부를 하자"고 유도하는 수법으로 100여명으로부터 120억원 상당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앞서 이 부부는 2월 3일 캄보디아 포이펫의 한 범죄단지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불과 넉 달 뒤인 6월, 다른 범죄조직이 현지 경찰에게 뒷돈을 건네며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법무부는 7월 말 캄보디아에 인력을 급파해 현지 경찰과의 공조로 이들 부부를 재체포했다. 그럼에도 부부가 다시 풀려났다면 체포와 석방이 두차례 반복되는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120억대 사기 혐의를 받는 강모 씨(32)가 캄보디아에 있는 지인에게 텔레그램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캄보디아 경찰에게 4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건네고 자신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다./독자제공

이 같은 상황은 현지 공권력의 부패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편 강씨는 지난 5월 캄보디아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해 "현재 프놈펜 경찰 정보국에 있다"며 "직접 와서 4만 달러를 내면 바로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경찰은 이 발언을 근거로 현지 수사기관과 부부간의 금전 거래를 의심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캄보디아 측이 6월에 부부를 석방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7월 재체포 이후 석방한 적은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캄보디아 경찰이 인터폴 수배자를 체포하고도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는 배경에는 외교적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에 체류중인 반정부 인사 부트 비차이(37)를 송환하라'고 요구하며 한국인 수배자들에 대한 인도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현지 당국이 자국 정치범의 송환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로 한국인 수배자들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27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캄보디아 반정부 집회에서 만난 민주화 운동가 부트 비차이(왼쪽에서 두 번째·37). 캄보디아 당국은 한국 정부에 그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김다빈 기자

부트는 소셜미디어에 자국 체제를 비판하는 콘텐츠를 올리는 정치 인플루언서로, 전주출입국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부트는 "저는 한국에 아내도 있고 여기서 두 아이도 낳았다"며 "캄보디아로 돌아가면 죽을 수도 있어서 한국 정부로부터 보호받고 싶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난민 신청자는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국내 체류 자격이 보장된다. 게다가 한국과 캄보디아 간 범죄인인도협정은 '정치범 불인도 원칙'을 명시하고 있어, 법무부도 송환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국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캄보디아로부터 한국인 범죄자 송환과 수사는 사실상 가로막힌 상태다. 캄보디아 거점 피싱 사기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경찰관은 "사기꾼이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체포되길 바라는 심정"이라며 "신원을 알고 혐의가 확실해도 국내로 데려올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강씨·안씨 부부와 함께 체포됐던 공범 7명은 지난 3월 한국으로 송환돼 울산지방법원에서 1심에서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다. 일부는 "부부에게 속아 취업한 뒤 감금된 상태에서 범행에 강제로 가담했다"며 "주범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은 채 이뤄진 1심 판결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이 같은 상황 탓에 경찰은 캄보디아 체류 피의자에 대한 인터폴 수배 자체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울산경찰청은 최근 캄보디아발 피싱 사기 수사 과정에서 14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인터폴 수배는 캄보디아 당국의 협조 여부를 파악한 뒤 결정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제 공조가 원활히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체포영장만 발부해 놓고 범죄자가 한국으로 입국하기를 기다린 뒤 국내에서 체포하는게 수사에 유리하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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