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것도 짝퉁이었어?'…방심하면 목숨까지 위험하다는데 [글로벌 머니 X파일]

김주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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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02. 오전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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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쇼크' 항공기·의약품까지 위협…"이제 신뢰가 돈이다"
조립 중인 CFM56-7B 제트 엔진© Jim R. Bounds/Bloomberg


각종 제품에서 ‘짝퉁’이 쏟아지면서 이른바 '검증 경제’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가짜 상품이 명품 시장을 넘어 항공기 부품, 의약품 등 생명과 직결된 영역까지 침투해 논란이 커지면서다. 일부 국가에선 정품 인증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글로벌 무역의 패러다임을 '효율성'에서 '투명성'으로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 중대범죄수사국(SFO)은 지난 5월 여객기 및 화물기 엔진인 CFM56·CF6 등 항공 부품을 판매한 회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호세 알레한드로 자모라 얄라를 사기 거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자모라 얄라가 이사로 근무한 AOG 테크닉스라는 회사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항공기 부품의 원산지, 상태 또는 상태와 관련된 문서를 위조해 고객사를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AOG의 부품을 구매하거나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는 항공사의 관련 항공기는 세계적으로 운항이 일부 중단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EU 내에서 압류 및 적발된 위조품은 1억 5200만 점(추정 가치 34억 유로)에 달했다. 전년 대비 가치 기준으로 68%나 급증한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 지식재산권청(EUIPO)의 공동 보고서에선 2021년 기준 위조 및 불법 복제 상품의 국제 교역 규모가 전 세계 교역액의 최대 2.3%(약 4670억 달러)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마티아스 코만 OECD 사무총장은 "불법 무역은 공공 안전을 위협하고 지식재산권을 훼손하며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위조 상품이 생명과 직결된 핵심 안전 산업까지 침투해 논란이 커졌다. 자동차 산업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청(NHTSA)은 기준 미달의 위조 에어백의 위험을 계속 경고해왔다. 위조 제품은 충돌 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금속 파편을 운전자에게 분사해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을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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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달 NHTSA는 위조 에어백 오작동으로 최소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포함해 총 7건을 조사 중이다. 소피 슐만 NHTSA 부국장은 "위험하고 표준 이하인 에어백은 생존할 수 있는 충돌 사고에서도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래왔다"고 경고했다.

의약품 분야의 위험도 심각하다. 인터폴이 주도한 글로벌 불법 의약품 단속 작전 '판게아 XVII'(2024년 12월~2025년 5월)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6500만 달러 상당의 불법 의약품(5040만 정)이 압수되고 769명이 체포됐다.관련 기술 발전이 짝퉁 증가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성장과 국경을 넘나드는 소형 화물 배송 시스템의 발달은 위조품이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됐다. 과거에는 암거래를 통해서만 유통되던 위조품이 클릭 몇 번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의 지난해 회계연도 단속 통계에 따르면 적발된 위조품의 97%가 소형 화물에서 나왔다. 전통적 통관 망을 우회하는 '스몰 패킷' 경로가 악용됐다는 뜻이다. 이반 아르벨로 미국 국가지식재산권조정센터 국장은 "위조 자동차 부품 및 장비의 증가는 계속해서 놀라운 상승 추세"라고 지적하며 온라인을 통한 불법 유통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로 짝퉁 판매가 더 교묘해졌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만들어진 '딥페이크'와 현실적인 디지털 위조품은 전문가의 눈조차 속일 만큼 정교해지고 있다. 제품 사진, 공식 문서, 심지어는 브랜드 담당자의 영상 메시지까지 위조할 수 있으면서 기존의 디지털 인증 방식마저 무력화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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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역 신뢰 시스템이 붕괴하자 세계 최대 단일 시장인 EU는 강력한 규제 개입에 나섰다. 작년 2024년 발효된 '지속이 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이 대표적이다. ESPR은 EU 시장에 판매하는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해 내구성, 수리 가능성, 재활용성 등 지속가능성 요건을 강제하는 포괄적인 법적 프레임워크다.

이런 강력한 규제 이행의 핵심 도구가 '디지털 제품 여권(DPP)'이다. DPP는 제품의 원료 채취부터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및 재활용에 이르는 제품의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기록하고 추적하는 일종의 '디지털 이력서'다. 소비자는 제품에 부착된 QR코드 등을 스캔해 해당 제품의 원산지, 성분, 탄소 배출량, 수리 방법 등의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DPP 의무화는 모든 품목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한국이 주력 수출 상품 중 하나인 배터리는 2027년 2월 18일부터 적용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섬유, 가구, 타이어, 철강, 알루미늄 등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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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비용인 동시에 새로운 시장도 창출한다. 글로벌 '검증 경제' 관련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DPP 시장은 시장 조사업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평균 성장률 35%에서 46%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작년 약 2억 달러 규모였던 관련 시장은 2030년까지 최대 18억 달러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최근 검증 경제에서 '서비스형 신뢰(Trust-as-a-Service, TaaS)'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기술 스택처럼 여러 기술 계층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신뢰를 구축하는 다층적 생태계다. 기업들은 자사 제품과 공급망의 특성에 맞춰 각 계층의 기술들을 조합해 최적의 검증 솔루션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스타트업 알리테온의 '피처프린트' 기술은 제품 표면의 미세한 고유 패턴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한 뒤 AI로 분석하여 진위를 판별한다. 별도의 태그나 마커 없이 객체 고유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위스의 하엘릭사는 목화 섬유 같은 원자재 단계에서 고유한 DNA 마커를 주입해 최종 제품까지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는 솔루션을 상용화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C&A는 올해 말까지 유기 면화 1만6800톤과 캐시미어 1000톤에 하엘릭사의 DNA 마커를 적용할 계획이다.

공급망 추적을 돕는 기업도 있다. 영국의 서큘러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볼보 자동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채굴부터 최종 조립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럭셔리 업계의 아우라 및 아리아니 컨소시엄 역시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제품의 '디지털 출생증명서'를 발급하고 소유권 이전을 관리한다.

반면 원자재의 출처부터 최종 조립까지 전 과정을 추적하고 증명할 수 없는 불투명한 공급망을 이용하는 기업은 EU 시장에서 퇴출당할 전망이다. 여러 단계의 하청 구조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파편화된 공급망을 가진 기업일수록 관련 리스크가 크다는 지적이다. DPP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디지털 역량과 자본 투자가 부족한 중소기업 역시 부담이 크다. 비영리 기관 'GS1'은 지난 7월 영국 기업 임원 중 DPP 준비가 완료된 비율은 16%에 불과하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한국도 검증 경제로 전환은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 때문이다. EU가 DPP 우선 적용 대상으로 선정한 품목 대부분이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과 직접적으로 겹치기도 하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027년 2월부터 시행되는 배터리 여권은 이들 기업에 시급하고 직접적인 과제다. 코발트, 리튬 등 핵심 광물의 원산지, 채굴 과정에서 인권 문제, 탄소 발자국,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 등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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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의 전자 제품 역시 ESPR의 주요 규제 대상이다. EU는 이들 제품에 대해 에너지 효율뿐만 아니라, 수리 용이성 점수와 재활용 원료 사용을 강제할 계획이다. 제품 설계 단계부터 순환 경제를 고려한다. 기존의 대량 생산-소비-폐기 모델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의 섬유·패션 산업도 DPP 도입에 대비해야 한다. EU는 의류의 내구성, 재활용 가능성, 미세플라스틱 배출량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자동차는 직접적인 DPP 대상 품목은 아니다 하지만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 여권이 의무화되면서 사실상 규제 영향권에 들어갔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공급사로부터 DPP 준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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