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으로 생긴 마음의 병… SOS 친 노동청에선 "사측이 시정" 종결 [과로死회 (중)]
33개월 만에 복귀했더니 또 재택
온동네 소문도 모자라 최하 등급
하루 14시간 웹툰 채색 보조작가
그라인딩 투입된 이주노동자 등
'산재 불승인'으로 고통은 가중 "우리는 그들에게 마음껏 굴려도 되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각기 다른 일터, 다른 노동의 형태. 그러나 이들이 전하는 말은 같았다.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건 '불인정'이었다.
■"2차 가해·5일간 못 자기도"
S호텔 직판그룹 지배인 김주희씨(가명·44)는 2005년 회식 후 귀가하던 택시 안에서 직속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이후 가해자의 험담과 이간질이 이어졌고, 2021년 인사담당자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분리조치'를 이유로 김씨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했다는 것이 김씨 측 주장이다.
이후 2년9개월 동안 복귀가 허용되지 않았다. 겨우 일터로 돌아왔으나 피해 사실이 사내에 퍼졌고, 회사는 또다시 재택근무를 명령했다. 김씨는 장기 재택근무 여파로 중증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았다. 지난 1월 산업재해 14등급(후유장해)을 인정받았으나, 노동청은 "사측이 이미 시정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종결했다. 분리조치는 '예방적 인사조치'로 분류돼 불이익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비밀유지 서약서조차 없어 피해 보호조치도 미흡했다"며 "5년 방치된 것도 모자라 올해 인사평가에선 최저 등급을 받았다. 노동청도 회사 편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웹툰업계에서 8년 동안 채색 업무를 맡아온 웬디고 작가(34)는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계약이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하루 14시간 이상 작업하는 날이 많았고, 근로계약서조차 작성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품 하단에는 작가 이름 대신 스튜디오명이 올라 노동 사실을 입증하기조차 어려웠다. 마감이 다가오면 철야가 반복됐지만, 원고료는 페이지당 700~1100원에 불과했다. 월 38만원 남짓한 수입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쓰리잡'을 병행하는 삶이었다.
그는 "작업을 하루 10시간씩 하면 시력이 떨어지고, 목디스크·거북목은 기본"이라며 "산재 처리를 못 받아 신체를 회복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산재 불승인이면 살 수 없어"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씨(40)는 경기 안성의 한 농기계 공장에서 하루 8시간 넘게 고강도의 그라인딩 작업을 맡았다. 쇳가루에 노출된 지 5개월 만에 건강 이상이 나타났지만, 공장은 병원에 갈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는 뒤늦게 '상세불명의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폐기능이 40% 없어졌는데, 미리 알았다면 20%는 살릴 수도 있었다는 게 아지트씨의 울분이다.
그는 2022년 산재를 신청했지만, 8개월 뒤 현장 조사가 이뤄졌을 때는 이미 공장 구조가 바뀐 상태로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업무와의 인과관계 부족' 판정을 받았고, 산재는 불승인됐다. 아지트씨는 "병원에서는 몸 관리 잘하라 하지만, 돈이 없다"면서 "산재 승인 나오지 않으면 그냥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를 돕는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목사는 "근로복지공단은 사측 진술만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며 "이주노동자를 인간으로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간의 방치와 불승인 속에서도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견디고 있다. 웬디고 작가는 "예전에 만화 쪽에서 일하던 분들도 계셔서 제 얘기 들어주고 '힘든 거 다 안다'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게 위안이 된다"고 전했다.
아지트씨도 교회 공동체의 지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나처럼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5년 전 추석,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하다 과로로 세상을 떠난 고 김원종씨의 동생 효종씨는 과로사 소식을 접할 때마다 형이 생각나 마음이 저민다면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은 눈치가 보여 말도 못하고 참 슬픈 현실"이라며 "고용주들이 과로사를 진짜 심각하게 생각해야 세상이 바뀌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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