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검찰이란 괴물 진짜 사라지나

손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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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안 통과, 1년 후 검찰 소멸
문제의 근원은 검찰이란 괴물 키워
권력 유지에 악용한 정치권력에 있어
정치가 수사기관과 선 긋지 않는 한
제2, 제3의 검찰 탄생할 가능성 커
보완수사 박탈로 국민 피해 커질 것
논설실장

검찰에 조종(弔鐘)이 울렸어도 어째 조용하다. 전직 검찰총장들이 법이 통과된 후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를 냈을 뿐, 잠잠하기만 하다.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국민 대다수가 인정하는 상황이라 검사들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78년 만에 검찰이 문을 닫기까지는 1년의 시간은 남아 있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개혁 방향이 맞는지 되새겨보고 보완할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기존 검찰의 문제점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권력유지의 도구로 이용된 점이다. 검찰이 이 지경에 이른 원죄는 검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검찰을 괴물로 키워 악용한 정치권력에 있다. 검찰 문제의 본질과 근원은 검찰이 아니라 정치권력인 것이다.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사람은 인간인데 그 책임을 프랑켄슈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검찰이라는 괴물은 스스로 자란 게 아니라 정치권력이 키운 것이다.

검찰에 모든 책임을 씌워 검찰을 없애버린 개혁은 핵심을 비켜갔다. 검찰을 그대로 두되 정치권력이 검찰의 독립을 보장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어느 정권이든지 말로는 검찰 독립을 강조하고는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이 자신들에게 수사의 칼끝을 대자 인사권을 발동, 검찰을 수하에 두려 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방법으로 검찰을 장악했다.

검찰을 정부 조직에서 지우는 것으로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적다. 검찰은 사라지지만 검찰의 수사권을 이어받은 아류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권이 새로운 수사조직에서 손을 완전히 떼지 않는 한 또 하나의 프랑켄슈타인, 제2·제3의 검찰이 탄생할 것이다. 특검과 공수처, 중대범죄수사청, 국가수사본부 등 검찰의 자리를 대신 메울 기관들이다. 새 정부가 이 기관들을 손아귀에 넣어 조종하려 한다면 검찰 개혁은 무의미하다. 검찰을 없앤다고 개혁이 달성되지 않는다. 검찰 개혁은 정치 개혁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두번째로 검찰 개혁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구시대적 수사 방식이다. 2000년대 초까지도 검찰 수사과정에서 신체적 가혹행위가 존재했다. 신체적 가혹행위가 아니더라도 피의자의 인권을 짓밟는 정신적 가혹행위는 지금도 버젓이 있다. 변호사 입회와 CCTV 설치 등으로 수사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미리 만든 결론에 따른 '짜맞추기' 수사는 기본이었고, 그래도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별건수사'해 처벌했다. 최근 벌어진 특검 피의자의 자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안들이 마련돼야 한다. 개혁안에 검찰 수사의 악습에 대한 개혁은 없다.

검찰이 사라진 후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범죄 피해자나 고소·고발인의 권리 침해다. 수사에도 재판의 3심제와 같은 제도가 있다. 1차 수사기관인 경찰의 수사에 더해 재판의 항소심과 같은 역할을 검찰의 보완 수사가 맡는다. 검사가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3심 격인 고검에 항고해 수사 재기를 요청할 수 있다. 검찰 수사권이 박탈되면 보완 수사와 항고 절차가 없어질 수 있다.

객관적으로 형사 수사 전문성에서 경찰의 역량은 검찰에 비해 뒤떨어진다.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면 경찰이 수사를 잘못해서 가해자를 풀어줘도 피해자나 고소·고발인은 구제받을 길이 없다. 물론 항고권도 동시에 없어진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범죄가 160만건이 넘는다. 피해자가 최소한 그만큼 된다는 의미다. 1차 수사기관인 경찰에서 수사를 미흡하게 해서 그대로 종결하면 하소연할 데도 없는 피해자들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 개혁으로 검사의 보완 수사권을 박탈하더라도 보완 수사 요구권이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수사 전문가들의 주장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정치에 휩쓸리는 검찰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다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변호사는 (피해자들에게) "지옥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검찰 개혁은 정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정치가 수사권력과 선을 그으면 만사가 풀린다. 검찰에 책임을 떠미는 것을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검찰이란 괴물을 만든 정치권력이 자신의 과오를 모른 채 괴물을 잡는 사이 아무 죄 없는 민초들만 피해를 본다. 아직 시간이 있다. 민생을 강조한다면 개혁의 방향도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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