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아베 잇는 '여자 아베' 불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강한 의지
대학 때 오토바이와 드럼 즐겨
[서울경제]
21일 일본에서 사상 첫 여성 지도자가 탄생하면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가 걸어온 정치 이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짜 정치인 시절부터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면전에서 과거사 사죄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등 ‘여자 아베’, ‘극우 여전사’로 자리매김하면서 30년 넘게 당내 기반을 쌓았다.
1961년 3월 7일 일본 나라현에서 태어난 다카이치 총리는 고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정치인 양성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정치 수업을 받았다. 후지TV 아나운서로 잠깐 일한 뒤 1992년 참의원(상원) 선거에 도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이때 자민당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듬해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나라현 지역구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처음 당선되면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함께 국회에 입성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유당·신진당을 거쳐 1996년에 자민당에 입당한 뒤 남성 중심적인 자민당 조직에서 ‘유리천장’을 뚫고 10선 의원까지 올랐다. 아베, 아소 다로,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등 전직 총리들이 모두 세습 의원인 반면 다카이치 총리는 평범한 맞벌이 가정 출신으로서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자민당에서 정책 입안을 책임지는 정무조사 회장, 내각 핵심 요직인 총무상·경제안보상 이력을 바탕으로 2021년과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연이어 나섰지만 각각 3위, 2위로 고배를 마셨다. 이후 1년간 내각 요직을 맡지 않고 지방 강연을 다니면서 민심을 얻은 끝에 이달 세 번째 도전 만에 자민당 창당 70년 역사상 최초 여성 총재로 선출됐다.
다카이치가 비세습 정치인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총리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강경한 보수 색채 덕분이었다. 초선 의원이던 1994년 10월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과거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당시 총재를 향해 “50년 전 지도자가 했던 일을 잘못했다고 판단할 권리가 이 나라를 잠시 맡은 총리에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총리가 멋대로 대표로 사과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쏘아붙이며 선배 의원들과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아베 전 총리의 극우적 노선을 계승한 것도 다카이치 총리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베 전 총리가 처음으로 집권했던 2006년 내각부 특명담당 대신으로 처음 입각한 뒤 정무조사회장, 총무상(2회)를 맡으면서 아베 시대를 함께 했다. 2021년 첫 총재 선거에서도 선전한 배경도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각료로 재임하는 동안 아베 전 총리처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극우 행보를 보이면서 ‘여자 아베’로 평가받았다. 그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야스쿠니신사는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 온 장소로 국책(國策·국가 정책)에 따라 숨진 이들에게 계속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롤 모델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로 ‘대처 회고록’을 즐겨 읽는다. 어린 시절 ‘빨간 장미처럼 살라’는 모친의 말처럼 대학생 시절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오토바이를 즐겨 탔다.
2004년 자민당 8선 의원을 지낸 야마모토 다쿠와 결혼한 뒤 2017년 정치적 이견으로 이혼했다가 2021년 재결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2004년 결혼 소식을 알리는 블로그에서 2003년 중의원 선거 패배 후 야마모토가 “선거 패배 후 기분을 나도 안다”며 자신의 방을 청소해주고, 비서진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소개했다.
다카이치 총리 부부 사이에 낳은 자녀는 없다. 야마모토 다쿠는 결혼 후 일본 부부동성제에 따라 아내의 성을 쓰고 있다. 재팬타임스는 “다카이치가 남편이 전 처와 낳은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올해 초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다카이치가 간병을 도맡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