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충격에도 척추뼈 찌그러져
노년 여성 취약해 주의 필요
골밀도 검사·비타민D 관리 필수
70대 여성 김모 씨는 연휴 후 심해진 허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단순 근육통으로 생각했지만 정밀검사 결과 ‘척추 압박 골절’ 진단을 받았다. 큰 사고가 없었는데도 뼈가 찌그러질 정도로 약해졌던 것이다.
이달 20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골다공증의 날’이다. 골다공증은 뼈의 강도가 약해져 작은 충격에도 쉽게 골절이 생기는 질환으로, 근감소증과 동반되면 노년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특히 척추 압박 골절은 단순한 골절에 그치지 않고 척추 변형, 만성 통증, 전신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골다공증 환자는 약 132만6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50세 미만 환자는 약 2만8000명에 불과한 반면, 50세 이상 환자는 144만8000명에 달했다. 김범준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유병률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말했다.
척추 압박 골절은 주로 골다공증 환자에게서 발생하며 특히 노년 여성에게 흔하다. 뼈의 강도가 약해진 상태에서는 넘어지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 사소한 충격만으로도 척추체가 눌려 찌그러지고 심한 경우 신경이 압박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흉추와 요추의 경계 부위인 제12흉추와 제1요추가 가장 취약하다. 최성훈 한양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국내 50세 이상 인구 3명 중 1명이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며 “이에 따른 척추 골절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제는 절반 이상이 통증을 ‘나이 탓’으로 여기거나 통증이 줄었다고 방치해 치료 시기를 놓친다는 점이다. 실제로 명절 음식 준비나 청소를 하다 생긴 허리 통증을 단순 염좌로 착각하고 지내다가 정밀검사에서 골절이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 증상은 갑작스러운 허리 또는 옆구리 통증이다. 특별한 사고 없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기침, 재채기만으로도 통증이 시작될 수 있다. 허리를 펴기 어렵고 움직일 때 통증이 심하며 골절 부위를 누르면 압통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골절 부위가 눌리며 유합되면 키가 줄고 등이 굽는 후만 변형이 생길 수 있다. 심하면 복부 압박으로 소화장애나 폐활량 감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최 교수는 “특히 한번 골절이 생기면 다른 부위 골절 위험이 급격히 높아져 ‘연쇄 골절’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독립 보행이 어려워지고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척추 압박 골절의 진단은 세심한 병력 청취에서 시작된다. 단순히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정도의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 현장에서는 최근 낙상 여부뿐 아니라 폐경 여부, 가족력, 체중 변화 등 골절 위험 인자도 함께 살펴야 한다. 영상검사에서는 엑스레이로 척추체의 높이 감소나 모양 변형을 확인하고, MRI(자기공명영상)로는 골절의 시기와 신경 압박 여부를 평가한다. CT(컴퓨터단층촬영)는 골절의 세밀한 양상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또한 골밀도 검사를 통해 골다공증 여부와 재골절 위험도를 평가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척추 압박 골절은 대부분 수술 없이 회복할 수 있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면 보존적 치료를 먼저 시행한다. 급성 골절의 경우에는 2~3주 정도 단기 안정이 필요하고 통증 조절 약물이나 흉요추 보조기를 함께 쓴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보조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증상과 상태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뼈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골다공증 약물치료는 필수다. 과거에는 비스포스포네이트계 약물이 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데노수맙·로모소주맙 등 단일항체 주사제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1년 내 골절을 경험했거나 다발성 골절이 있는 경우, ‘T-score’가 -3.0 이하인 초고위험군 환자에게는 로모소주맙이나 부갑상선호르몬 제제 같은 골형성 촉진제를 적극 권장한다.
최근 척추성형술과 풍선척추성형술의 장기 안정성과 치료 효과를 분석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기존 골시멘트보다 체내 흡수성이 높은 생체재료가 개발되고 있으며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척추 보형물의 임상 적용도 활발히 연구 중이다.
약물 분야에서는 로모소주맙 등 새로운 골형성 촉진제가 재골절 위험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꾸준히 축적되고 있다. 또 체질량지수(BMI)와 골절 발생 위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최근 연구에서는 낮은 체중이 척추와 고관절 골절 위험을 동시에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반대로 BMI가 높을수록, 특히 여성과 65세 미만 연령층에서는 척추 골절 위험이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도 확인됐다”며 “이는 환자 특성에 맞춘 맞춤형 골절 예측과 예방 전략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척추 압박 골절을 막기 위해서는 예방과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폐경 이후 여성이나 65세 이상 남녀는 정기적으로 골밀도 검사를 받아야 하며 가족력이나 체중 감소 등 위험 인자가 있다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칼슘과 비타민D를 충분히 섭취하고 근력과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규칙적인 운동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 또 금연, 절주, 적정 체중 유지 등 생활습관 관리도 필수다.
김 교수는 “칼슘은 뼈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영양소로, 식사와 보충제를 합쳐 하루 1000~1200㎎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며 “유제품, 멸치, 해조류, 두부, 녹황색 채소 등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단백질은 칼슘 흡수를 돕지만, 단백질 보충제나 동물성 단백질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오히려 칼슘 흡수율이 떨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비타민D의 경우 칼슘이 몸속에 잘 흡수되도록 돕는다”며 “햇볕을 쬐면 피부에서 자외선을 통해 비타민D가 생성되지만 긴팔 옷이나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골다공증 환자는 혈액 검사를 통해 비타민D 수치를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보충제를 복용해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또 짜게 먹는 습관은 나트륨 배출과 함께 칼슘 손실을 유발하므로 저염식이 필요하다. 술, 카페인, 인스턴트식품, 탄산음료, 흰 설탕 등 가공식품 섭취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 내 환경 개선도 중요하다. 미끄러운 바닥을 정리하고 조명을 밝게 유지하며 욕실과 계단에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면 낙상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고 바른 척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며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집안 조명을 밝게 하고 욕실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와 손잡이를 설치한다”고 말했따. 느슨한 카펫이나 문턱을 정리하고 미끄러운 신발을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척추 압박 골절은 단순한 허리 통증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번 발생하면 연쇄 골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보행 장애와 독립 생활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러나 정기적인 검사와 생활습관 관리, 조기 치료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세계 골다공증의 날을 맞아 지금 자신의 척추 건강을 돌아보고 작은 실천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건강한 노년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