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진의 노트] 가을 모기처럼 짜증나는 政爭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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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진 경제부 기자


새벽에 귓가를 스치는 "왱~"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모처럼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짜증이 확 났다. 가을 모기가 기승이라더니, 온몸에 붉은 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문득 '요즘 우리 정치판에도 모기가 많지 않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일하면서 국민을 편히 잠들게 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많으니 말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요즘, 국회에서는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국감은 국회가 국정 전반에 대해 진행하는 감사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매년 국감 시즌마다 '국감 무용론'이 등장한다. 국감이 되레 정쟁의 장이 되고, 의원들 이름 알리기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이제 막 첫 주 차를 마친 올해 국감도 벌써 여러 사건에 휩싸였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는 의원끼리 주고받은 '에휴 이 찌질한 놈아!'라는 문자가 공개돼 국감이 중지됐고, 법제사법위원회 국감 중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법원 현장 검증을 진행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감장을 빠져나갔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감에서는 "뇌 송송 구멍 탁" 등의 괴담을 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 간 고성이 오가다 감사가 중지되기도 했다. 기자실에서 국감 영상을 시청하다가 귀청이 터지는 줄 알았는데, "쯧쯧" 기자들의 혀 차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정치에 품격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감사는커녕 싸움판이 된 국회, 정쟁의 패턴은 매년 같다. 올해는 욕설, 지난해는 막말, 아마 내년에는 몸싸움이겠다. 여야의 공방은 국민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다음 선거 공천과 당내 입지, 언론 노출을 위한 쇼로 전락했다. 보좌진이 만들어준 자료를 목청 높여 읽기에 급급하고, 본인에게 유명세를 안겨줄 스타 증인을 부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영감님들이다.

기자와 의원실은 협력할 일이 많다. 그렇기에 국민과 지역 주민의 삶에 관심을 쏟는 의원들도 있고, 이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열심히 정책 공부를 하는 보좌진이 많다는 걸 안다.

특히 국감 시즌에는 저녁 시간은 물론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하는 직원이 대부분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젊은 피들을 알기에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는 정치 현장이 더욱 아쉽다. 라인을 타지 않고 소신 있는 정치를 펼치면 어느 순간 뒷방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게 지금 한국의 정치다.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국내 여러 갈등 사안 중 '정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노사 갈등, 빈부 갈등, 지역 갈등 등을 제치고 정치 갈등이 1위를 차지했다는 건 그간 쌓인 국민의 정치 피로도가 상당하다는 뜻이겠다.

정치란 본래 '피를 나누는' 일이지, '남의 피를 빨아먹는' 일이 아니다. 가을 모기는 겨울이 오면 사라지겠지만, 정치 모기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밤잠을 설치게 한 새벽의 모기처럼, 정치인들의 소란이 물가·부동산 등으로 가뜩이나 심란한 국민의 삶을 더욱 시끄럽게 하지 않길 바란다.

[지혜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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