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시대 승승장구하던 야후
후발주자 구글에 밀려나 쇠퇴
AI시장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
누가 살아남을지 예측 어려워
자율주행·항공 모빌리티 등
손에 잡히는 기술을 골라야
◆ 매경 뉴욕포럼 ◆
"인공지능(AI)이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를 예측하며 긴 호흡으로 투자하는 것입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5 뉴욕 글로벌금융리더포럼'에 참석한 월가 전문가들이 전한 조언이다. 최근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관련 기업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월가 일각에서는 'AI 버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월가 전문가들은 AI에 투자할 때 단기와 장기로 구간을 나누어서 서로 다른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포럼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브라이언 히긴스 킹스트리트 창업자는 인터넷 초기 시절 검색시장을 지배했던 '야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야후는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검색시장 점유율 약 40%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닷컴시대 가장 주목받는 상장사였다. 하지만 후발주자 구글이 급부상하자, 야후의 시대는 빠르게 저물었다. 히긴스 창업자는 "구글이 상당수 인터넷 기업을 전멸시키며 시장을 독식했다"며 "야후와 구글의 사례는 AI시대에 많은 교훈을 준다"고 설명했다.
아직 초기 단계인 AI시장에서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모두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잉투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히긴스 창업자는 "기업들이 현금 흐름을 통째로 털어넣다 못해 빚까지 내서 투자에 매진하고 있다"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영끌 투자'를 하지만 누가 구글이 되고, 누가 야후가 될지 현시점에서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또 그는 "MIT 연구에 따르면 현재 AI 프로젝트의 90%가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부실 투자가 생겨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AI라는 타이틀을 걸고 우후죽순 쏟아지는 신기술에 홀려 '묻지마 투자'에 나서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금 당장 주목받는 기업이라도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긴 호흡으로 확실하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기업을 골라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히긴스 창업자와 대담에 나선 윤제성 아레테노바어드바이저 대표는 단기에는 독보적인 시장 장악력이 있는 AI기업에 투자할 것을 당부했다. 윤 대표는 "오로라(Aurora)는 트럭 운송과 관련한 자율주행 적용 기술에서 탁월한 비교 우위가 있다"며 "미국 지역 항공 모빌리티 플랫폼인 서프에어모빌리티는 AI 기반 전세기 서비스를 출시해 차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기술을 바탕으로 '손에 잡히는' 서비스로 무장해야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 대표는 "베이징·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대도시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진행 중인 포니AI도 투자 리스트에 올릴 만하다"며 "중국에서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경쟁자가 따라붙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AI시장 자체에 투자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AI기업을 골고루 바구니에 담은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해 개별 주식에 투자하는 위험을 분산하는 식이다. 이 경우 투자수익률은 개별 주식에 투자할 때보다 낮을 수 있지만 적어도 AI기업이 도산해 큰 손실을 볼 위험은 덜 수 있다. 경쟁에 뒤처져 밀려난 AI종목 수익률이 부진해도 대박을 친 종목 몇 개가 이를 만회하는 식이다. 적어도 AI시장 규모가 커가는 만큼의 과실은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윤 대표는 "AI는 단기 미풍이 아니라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메가트렌드'"라며 "닷컴버블시대를 떠올리며 AI 자체에 등을 돌리는 것은 크나큰 패착"이라고 조언했다.
이날 세션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에 대한 경고 등도 함께 나왔다. 히긴스 창업자는 "미국 물가는 높은 수준에서 고착화하고 있다"며 "미국이 짊어진 부채와 재정적자 문제도 증시 하락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미·중 무역 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갈등 역시 언제든지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며 "미국 증시 상승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고 확신이 있는 종목에만 선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 특별취재팀=손일선 금융부장(팀장) / 임성현 뉴욕 특파원 / 홍장원 뉴욕 특파원 / 홍성용 뉴욕 특파원 / 길금희 뉴욕 특파원 / 최승진 워싱턴 특파원 / 원호섭 실리콘밸리 특파원 / 채종원 기자 / 문재용 기자 / 안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