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친절하면 무시해도 돼”…잇단 유괴 시도에 학부모 불안 증폭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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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12. 오전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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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시도부터 불법 촬영까지...학부모 불안감 증폭
10일 오후 3시께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하교하는 학생들을 데리러 나와 있다. 이곳은 얼마 전 분식점 사장의 초등학생 불법 촬영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사진 지혜진 기자]
최근 초등학교 인근에서 미성년자 약취 미수 사건과 불법 촬영 등 범죄가 연달아 일어나고 있어 학부모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3시께 방문한 서울 마포구 소재 한 초등학교 앞에는 방과 후 수업이 끝난 아이들의 하교를 함께하기 위해 여러 학부모들이 교문 앞에 나와 있었다.

이 학교는 최근 교문 앞 분식점 사장의 초등학생 불법 촬영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30대 남성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초등학교 여학생 10여 명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수 백장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날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은 분식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영업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여학생 10여 명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입건된 30대 남성이 운영하던 학교 앞 분식점의 문이 10일 오후 닫혀 있다. [사진 지혜진 기자]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매우 컸다. 1학년 자녀가 있다는 학부모 A씨(41)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사건 이야기가 퍼지며 다들 깜짝 놀랐다”며 “아이와 기사를 함께 읽어보며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는 등의 행동 수칙을 다시 가르쳤고, 요즘엔 어디든 함께 따라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2학년, 3학년 자녀가 있는 학부모 이솔지 씨(35)는 “학교에서도 요즘 유괴 관련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고, 특히 여자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은 아이를 계속 데리러 나오는 것 같다”며 “부득이하게 아이와 동행하지 못할 시에는 이동할 때 무조건 전화를 하게 한다”고 전했다.

아이들을 직접 데리러 나오기 어려운 학부모들은 하교 시 아이를 픽업해 줄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기도 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음악학원 관계자는 “어머니들이 많이 불안해 하신다”며 “최근 픽업 문의가 여럿 들어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인근 유괴 미수와 불법 촬영 사건 등으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경찰관이 학생들의 하교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서울, 대구, 제주, 인천, 경기...연이은 미성년자 겨냥 범죄
최근 전국 곳곳에서 미성년자 유괴 미수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관악구에서는 60대 남성이 학원을 가던 초등학생에게 다가가 “애기야, 이리 와”라며 손을 잡아끌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조사에서 “아이들에게 발레를 하라고 말했을 뿐”이라며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대구 서구 평리동에서도 60대 남성이 초등생에게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며 유인을 시도했다가 검거됐다.

같은 날 제주에서는 여자 초등학생에게 구경거리를 보여준다며 “알바(아르바이트) 할래?” 등의 말로 유인해 차에 태우려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날 인천 서구에서는 청라동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여중생에게 “태워다 줄까”라고 말을 건넨 60대 차량 운전자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학생은 당시 학교 주변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운전자는 “달리기를 하는 학생이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8일 경기도 광명에서는 10대 남성이 여자 초등학생을 유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도 발생했다. 고등학생은 아파트에서 귀가하던 초등학생을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입을 막고 끌고 가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소재 한 초등학교 인근과 근처 공영주차장 주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차량을 이용해 초등학생들을 유괴하려던 20대 남성 3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들은 피해 아동들을 향해 “귀엽게 생겼다. 장난 한번 칠까”라고 말하면서 범행을 즉석에서 계획했을 뿐 실제로 차량에 태울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아동을 노린 유괴 범죄는 최근 몇 년 새 꾸준히 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 대상 약취·유인 범죄는 2020년 113건에서 2021년 138건, 2022년 178건, 2023년 204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약취·유인 범죄 피해자에서 아동이 차지하는 비중도 44.2%에서 58.5%로 높아졌다. 경찰청 통계도 비슷하다. 미성년자 대상 약취·유인 범죄는 2020년 210건, 2021년 240건, 2022년 276건으로 매년 늘다 2023년 342건으로 처음 300건을 돌파한 뒤 지난해에도 316건 발생했다.

경보기 등 호신용품, 위치추적 앱 수요도 급증
어린 학생들을 겨냥한 범죄가 이어지자 아동용 호루라기, 경보기, 후추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 판매도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호신용품을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일주일 전에 비해 검색량과 판매량이 70% 늘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판매자는 “며칠 사이 5배 이상 매출이 늘었고 문의는 3배가 늘었다”며 “초등생이 사용하는 112 자동 신고 버튼이 요즘 최고 인기 품목인데, 자녀나 손주에게 주려고 샀다는 후기글도 많다”고 말했다.

위치추적 앱 수요도 급증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5000만 회 이상 내려받은 아동 보호용 앱은 주변 소리까지 확인할 수 있어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 “초등안심벨 확대 보급”, 경찰 “5.5만명 총동원 예방순찰”
초등안심벨 [서울시 제공]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약취유인 범죄 시도가 잇따르자 서울시는 11일 ‘초등안심벨’을 시내 모든 초등학생에게 확대 보급하기로 했다. 시는 “그간 초등학교 1~2학년에게 배포하던 초등안심벨을 내년부터는 전 학년 초등학생(약 36만명)에게 모두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초등안심벨은 아이들이 위급상황 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돕는 안전장비다. 키링처럼 책가방에 달고 다니다가 긴급상황 시 뒷면의 검은색 버튼을 한 번 누르면 곧바로 100㏈ 이상의 날카로운 경고음이 계속 나온다.

경찰도 전국 초등학교 인근에 기동순찰대에 교통경찰까지 5만 명 넘는 인력을 총동원할 방침이다. 경찰청은 11일 “전국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대에 맞춰, 어린이들의 통행이 많은 학교 인근, 주요 통학로 주변에 경찰을 집중 배치하겠다”며 “장시간 정차 차량, 어린이 주변을 배회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는 등 수상한 사람을 발견할 경우 적극 검문검색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방 순찰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지구대, 파출소 소속 지역 경찰관 4만8347명, 기동순찰대 2552명뿐 아니라 교통경찰 3152명, 학교전담경찰관(SPO) 1135명 등 총 5만5186명에 이르는 인력을 시간대를 달리해 투입한다. 필요할 경우 형사, 경찰관, 기동대까지 동원할 계획이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10차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최근에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납치 유괴 사건이 계속 알려지고 있다”며 “국민 우려를 불식할 수 있도록 신속한 수사, 철저한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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