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무너진 피해자
심리적 취약성 노린 2차사기
‘자살’ 검색엔 상담센터 안내
‘보이스피싱’은 광고 줄줄이
“피해자 심리지원 대책 필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이후에도 이들을 타깃으로 한 2차 사기로 고통받고 있는 실정이다. [ChatGPT]이미 보이스피싱에 한 차례 당한 피해자의 앞에는 또 다른 덫이 기다리고 있다. 범죄 직후 흘러나간 개인정보는 인터넷과 불법 거래망을 떠돌고, 충격과 자책으로 무너진 피해자의 마음은 새로운 범죄에 더욱 취약해진다. 이미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은 피해자가 또 다른 사기 수법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심리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보이스피싱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피해자들은 가장 먼저 인터넷을 통해 피해 구제 방법을 검색한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을 검색했을 때 포털 사이트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법무법인 광고다.
한 포털사이트에 ‘자살’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포털사이트 화면 캡쳐]이는 ‘자살’을 검색했을 때 상담센터와 예방 핫라인이 먼저 노출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포털사이트에 자살을 검색하면 최상단에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자살예방상담, 정신건강상담전화 등 24시간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번호와 함께 각종 지원센터 배너가 눈에 들어온다. ‘우울을 예방·극복하는 방법’과 ‘먼저 병원에 가야하는 이유’ 등 첫 화면에서부터 “지금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캠페인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셈이다.
한 포털사이트에 ‘보이스피싱’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포털사이트 화면 캡쳐]반면 ‘보이스피싱’을 검색했을 때 나타나는 화면은 전혀 다르다. 포털사이트 최상단을 가득 채운 건 ‘○○법무법인’, ‘형사변호사 피해 구제 전문’ 같은 광고들이다. 스크롤을 몇 차례 내려야 상담센터나 지원기관 안내가 보인다. 피해자들은 구조의 손길보다도 ‘상담료’와 ‘수임료’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현실에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피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무법인을 찾지만, 사실상 피해 회복이 어려운 사건도 무리하게 수임하는 법무법인도 있다. 이미 전재산을 잃는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수임료를 지불했음에도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피해까지 떠안게 된다.
피해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해 변호사나 법무법인을 사칭해 접근하는 브로커와 가짜 상담소도 기승을 부린다. 사기 피해 구제를 안내하고 있는 한 사이트에는 “사기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피해 금액 전액 회수를 목표로 한다”, “피의자와 직접 합의해 억 단위 금액을 돌려준다”는 자극적인 문구가 버젓이 걸려 있다. 하지만 막상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명확한 정보가 제시되어 있지 않거나, 엉터리인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2차 사기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거절을 잘 하지 못하거나 자존감이 낮은 성격적 특성을 가진 경우가 많아, 충격을 겪은 뒤 또다시 타깃이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이후 심리 치료와 함께, 본인이 2차 범죄에 취약성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고 상담을 통해 보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사회적 재난 피해자로 봐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의 상담과 치유 지원, 교육을 마련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수민·김송현·지혜진·양세호·문광민 기자
이수민 기자(lee.sumin2@mk.co.kr), 김송현 기자(kim.songhyun@mk.co.kr),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양세호 기자(yang.seiho@mk.co.kr), 문광민 기자(doo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