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영혼에게 현대 미술의 기원을 묻는다

김슬기 기자 TALK
입력
수정 2025.08.27. 오전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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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서 26일 개막
백남준 이승택 박찬경 등 참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 백남준의 ‘TV 부처’가 설치되어 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일제강점기인 1928년 건축된 경성재판소를 개보수한 공간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이다. 100년 영혼의 고독이 깃든 이 곳이 ‘귀신의 집’으로 변신했다. 계단부터 내부까지 전체를 검은 천으로 덮어 암실처럼 꾸민 전시장은 마치 강령술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으스스하고, 기기묘묘한 작품이 가득 설치됐다.

8월 26일부터 11월 23일까지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강령: 영혼의 기술’ 주제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을 중심으로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청년예술청 등 서울 전역에서 개최된다. 뉴욕에서 작가, 기획자,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가 예술 감독을 맡아 동시대의 전지구적인 현상과 미적 열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해석의 지점을 제시한다.

개막일인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비도클은 “동시대 미술의 발전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전시”라면서 “신비주의적, 예지적, 은밀한 예술 창작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역사를 살펴보려한다”라고 말했다.

‘무속의 나라’인 한국에 잘 어울리는 시의적절하고 흥미로운 비엔날레가 탄생했다. 50팀의 참여 작가에는 요셉 보이스, 조지아나 하우튼, 마이크 켈리, 안리 살라, 히와 케이, 아노차 수위차콘퐁 등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작가들이 다채롭게 포함됐다. 영적 실험의 역사를 영화,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가 총동원됐다. 애니 베전트, 힐마 아프 클린트 등 숨겨진 예술가들이 영적인 감화로 비롯된 추상회화도 눈길을 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설치 전경.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한국 작가 참여가 적은 아쉬움이 있지만, 전시의 중요 맥락은 한국 베테랑 작가들이 제시한다. 이승택은 25일 저녁 조각상을 불태우는 퍼포먼스 ‘분신행위예술전’(1989)을 재연했다. 그에게 화장은 신성 모독 행위가 아닌 예술을 영적 차원으로 전이하는 행위다. 서소문관 1층에 이승택과 나란히 설치된 쿠바 작가 라파엘 케네디트 모랄레스의 정교한 금속 부조에는 물방울이 금속에 구멍이라도 낼 것 처럼 떨어진다. 물과 불의 대비다.

1층에는 마치 귀신을 목격하고 그린 듯한 다채로운 추상회화들이 가득하다. 이 회화의 한가운데 백남준의 ‘TV 부처’가 놓였다. 조명으로 인해 마치 도깨비처럼 보이는 부처가 귀신들의 공간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백남준의 무속적 의례와 동시대 미술의 결합을 이번 전시 주제에 맞게 재해석한 셈이다. 마지막 공간인 3층에서 박찬경은 삼국유사의 불법(佛法)에 주목한 회화인 ‘혜통선사’를 걸었다.

점성술, 주역치료 같은 신비주의적 소재가 총출동했고, 정치적 폭력에 맞서는 유령적 영화까지도 선보인다. 마녀 집안에서 자란 요하나 헤드바는 18세기 마법주문서를 다시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노무라 자이의 ‘유령’은 고인의 이미지를 물 위에 프린팅하는 장치를 고안했다. 매시간 정각에 물 위로 잉크들이 분사되어 초상이 유령처럼 부유하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ORTA 의 퍼포먼스 ‘새로운 천재들의 위대한 원자폭탄 반사기 경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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