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라는 프로그램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첫 연애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울고, 웃고,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격려하며 지켜봤다.
'나는 솔로' '환승연애' 등 연애 프로그램도 매 기수 출연자들이 연예계에 진출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끈다. 나도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정적이 생기면 곧잘 그 시기에 가장 화젯거리인 연애 프로그램 이야기를 꺼내는데, 금방 분위기가 달아오르게 하는 좋은 아이스 브레이킹 소재가 된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젊은 층의 연애 프로그램이 대성공을 거두는 까닭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여러 인간 군상을 접할 수 있다는 점, 본인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어깨를 짓누르는 걱정과 고민을 잠시 뒤로한 채 사랑이라는 감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비현실적 환경이 부럽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젊었을 때 연애 많이 해보라"는 뭇 어른들의 말처럼 예쁜 나이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좋겠지만, 요즘 청년에게는 연애가 그리 녹록지 않다. 올해 초 한 데이터 컨설팅 기업이 전국 만 20~49세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7%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젊은 층이 연애를 하지 않는 데는 각박한 현실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불안정한 취업 시장에서 스펙 쌓기에 급급하고, 치솟는 물가 때문에 데이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교제 폭력 등 사건이 빈발하며 남녀 가리지 않고 서로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상대인지를 탐색하는 데 오랜 시간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이전 세대보다 큰 것 같다.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한 세대이다 보니 검증된 사람과의 실패 없는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타인과의 비교에 실시간 노출되는 환경도 연애 상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요즘 20대 가입자가 전보다 많이 느는 추세"라며 "강남에 정착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상대방에게 원하는 직업, 연봉 등을 상세히 정리해 온다"고 전했다.
젊은 층이 연애를 주춤하게 되는 일련의 이유가 곧 우리 사회 구성원 간 사랑이 줄어드는 원인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나 살기 바빠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경계해 이웃의 선의를 의심하며, 친구의 아픔을 나눠 갖지 못하고, 상대방과의 다름을 조율해보지 않고 돌아서는 것. 고독사,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 살인 등 각종 사건·사고의 원인이 된다.
기자로 일하며 미담도 들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건·사고 소식을 접했다. 쏟아내는 피해자의 호소는 뇌리에 깊게 박힌다. 날로 진화하는 범죄 수법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뒤통수 맞는 일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인류애'를 잃고 각박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얼마 전 가수 이찬혁이 '멸종위기 사랑'이라는 곡을 냈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질문이 인상 깊었다. 연애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고, 나 또한 연애 맹신론자는 아니다. 일, 돈, 성향 등 각자의 이유로 연애는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할지라도,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사랑의 종말론'이 아니라 '사랑해 정말로'를 외치는 세상 말이다.
[지혜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