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촛불과 올해의 촛불, 뭐가 달라졌을까 [데스크칼럼]

손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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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엄령이 불붙인 촛불민심
8년전처럼 활활 타오르려면
尹탄핵·李살리기 차원 벗어나
용광로처럼 새희망 담아내야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017년 2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7차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매경DB
한 친박계 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겨우내 촛불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더욱 크게 번졌다. 3만명(주최측 추산)으로 시작된 집회는 232만명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여차례 촛불집회의 누적 참가인원은 1600만명에 달했다. 민주노총 등 일부 세력이 판을 깔기는 했지만 결국 주인공은 시민이었다. 시민들의 촛불이었고 시민들의 광장이었다.

첫 촛불집회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133일간의 역사’로 남아있는 2016년 촛불혁명 이야기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열기, 청와대까지 울려 퍼진 대중의 함성, 끝없이 이어지던 촛불의 물결 등은 촛불시위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국제사회도 촛불시위를 “비폭력 혁명의 교과서”라고 치켜세웠다. 외신들은 “국민은 국가의 대표를 세우기도 하지만 끌어내릴 수도 있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 평화혁명”이라고 했다.

지난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승환 기자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4년 겨울.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지난 토요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앞두고 시민들이 삼삼오오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표결 시간이 다가오자 주최 측 추산 100만명, 경찰 추산 15만명이 촛불을 들고 윤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을 찍었다는 한 시민은 “윤석열은 계엄이 아니라 전쟁까지 할 사람 같아서 이번 집회에 참석했다”며 “탄핵이 될때까지 계속 촛불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밤의 비현실적 계엄령이 불붙인 ‘촛불시위 2.0’이 시작된 것이다. 구호(탄핵)도 장소(광장)도 계절(겨울)도 2016년 판박이다.

과연 2024년 촛불은 2016년 촛불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의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는 점에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계엄령 선포가 위헌적 행동이었다는 점도 법조계에서 이견을 찾기 힘들다. 13%까지 추락한 지지율이 지금 윤 대통령이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촛불이 타오를 수 있는 외부 여건은 2016년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2016년 촛불과 2024년 촛불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시민들이 촛불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2016년 촛불혁명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가족들이, 내 이웃들이 손을 잡고 들어올린 촛불이 대한민국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더 위대한 나라로 나아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2016년 촛불을 들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세상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촛불에 대한 생각이 2016년보다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시민들이 대안세력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윤석열 정권이 퇴진할 경우 현재 가장 유력한 대안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현재 4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같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일부 중도층 시민들이 촛불을 드는걸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2016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민주당의 문재인정부가 민주노총 등의 과도한 촛불청구서에 끌려다니던 무기력한 모습도 아직 국민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2024년 촛불이 시민들의 열망과 에너지를 한데 모아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마중물이 되려면 2016년보다 더 큰 용광로가 돼야 한다. 단순히 ‘윤석열 퇴진’ 또는 ‘이재명 살리기’만을 앞세워서는 안된다. 이를 뛰어넘어 개헌까지 아우르는 정치개혁 청사진을, 대한민국 대개조의 바램을 촛불에 담아내야 한다. 그래야 2024년 촛불 역시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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