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페미니스트 미디어 그룹’ 연분홍치마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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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주년 맞은 연분홍치마 김일란 감독, 넝쿨 사무국장 인터뷰
연분홍치마 멤버들, 현재 총 6명이다. 지난 8월 10일, 창립 21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단장한 연분홍치마를 소개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이야기는 자리-‘연분홍치마 20+1 The Next Staff’를 열었다. (제공: 연분홍치마)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연분홍치마’를 모를 수 없다.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홍지유, 한영희 감독, 2009), 〈두 개의 문〉(김일란, 홍지유 감독, 2012), 〈공동정범〉(김일란, 이혁상, 2016),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감독, 2021)… 사실 연분홍치마는 다큐멘터리만 만든 것도 아니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신경수 감독, 2024)도 있고, 연분홍TV에서는 시트콤 〈으랏파파〉(김일란 연출, 이반지하 극본)와 예능 프로그램 〈퀴서비스〉도 만들었다. 이런 작품들뿐만 아니라 연분홍치마는 늘 어떤 투쟁 현장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카메라를 든 활동가들이기도 하다.
 

그런 연분홍치마가 “20+1”주년을 맞이했다. 20년이면 한 인간이 사회에서 ‘성인’으로 받아 들여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두 번이 바뀐 시간이다. 2004년 ‘성적소수자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발족한 연분홍치마는 사회적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생존하였다. 그리고 올해 “20+1”주년을 맞이해 ‘퀴어 페미니스트 미디어 그룹’으로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겠다고 선언했다.
 
연분홍치마는 과연 어떤 곳일까? “20+1”주년을 맞이한 연분홍치마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아갔다. 연분홍치마 창단 멤버인 김일란 감독과, 2016년부터 연분홍치마와 함께 해오고 있는 넝쿨 사무국장을 만났다.
 
-연분홍치마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요?
 
김일란 감독(이하 일란): 처음부터 대단한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니에요.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다가 ‘공부만 계속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단체를 만드는 걸 생각하게 됐죠. 어떻게 해야 사회운동, 페미니즘 단체가 될 수 있을지 한 2년 정도 준비하다가 단체를 발족하게 됐어요.
 
-그럼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일란: 연분홍치마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저희가 영상 제작 단체로 시작했을 거라는 거예요. 저흰 카메라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생각도 못 했어요. 다만 일상의 실천을 예술의 영역 안에서 해 보자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래서 기지촌 여성들을 만나 실태조사를 했는데, 이렇게 만나 이야기하는 김에 이 ‘이모’들의 말을 잘 기록해 놓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 때만 해도 영상기록과 다큐멘터리를 크게 구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일단 만들게 된 거죠.
 

-이후로 카메라를 계속 들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감독 (제공: 연분홍치마)    


 
일란: 스스로도 사실 그 답을 못 찾고 있었는데, 최근에서야 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카메라를 계속 들게 된 건 ‘필연적인 우연’이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이 엄청 뜨거웠을 때였고, 그런 상황에서 기지촌 여성에 대한 다큐를 만든 거죠. 〈마마상, 리멤버 미 디스 웨이〉(김일란, 조혜영 감독, 2005)를 제작한 이후, 그 다큐가 다큐멘터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사회운동이 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상영회를 열고 토론을 하고… 이런 과정이 운동이구나 싶더라고요. 또 영화제 상영을 하면서 관객을 만나다 보니까 ‘아, 이게 힘 있는 대중운동이구나’ 깨닫게 된 거죠. 연분홍치마는 대중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할 수 있구나 싶으면서 ‘또 해보자.’ 하게 된 것 같아요.
 
-연분홍치마의 작업들을 보면서, 멤버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할까, 어떻게 운영하는 걸까 궁금했어요.
 
넝쿨 사무국장(이하 넝쿨): 제가 연분홍치마에 들어왔던 즈음엔 멤버가 돌아가면서 작품을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하나의 작품을 만들면 함께 제작비와 생활비, 운영비를 분담했고요. 그 때문에 모두가 감독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하다 보니까, 나는 다른 멤버들처럼 창작에 대한 불타는 열의가 있거나 욕망이 있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단체 내 역할이 조금씩 조정되어 간 것 같아요. 지금은 사무국장을 하면서 운영과 홍보 등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일란: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한텐 항상 의문이 있었거든요. 연분홍치마에 ‘조직 체계가 없다’는 말이 계속 반복되어 왔는데, 그걸 늘 과제처럼 지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턴 ‘우리는 안 되는 조직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힘들기도 했고요. 최근에야 ‘아, 우리가 굉장히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 있었던 거구나’ 하고 답을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연분홍치마는 보통의 영화제작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성운동단체도 아니예요. ‘영화제작사로서 갖춰야 할 합의된 조직체계’와 ‘운동단체로서 일상적 활동을 해야 하는 체계’가 없었고, 그게 우리에게 맞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작품을 만들기 위한 체계는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스스로) 그걸 인정하지 않고 ‘운동단체는 그런 체계를 가질 수 없다,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연분홍치마라는 단체가 사실 특수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의 운영체계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것을 의미화하지 못했고, (우리에게) 맞는 언어를 찾지 못했던 거죠. 이제야 그걸 알게 됐고, 사무국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감을 잡아가는 것 같아요. 저희도 크게 감각하지 못했는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연분홍치마 같은 단체는 정말 보기 힘들다 하더라고요. 퀴어 페미니스트로 인권운동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꾸준히 만드는 단체는요.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요. 20년 넘게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요?
 
 
넝쿨: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연분홍치마는 어떻게 안 깨지고 오래 온 것 같냐고요. 그 때 번뜩 든 생각은 ‘주인공들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였거든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건 영화 속 주인공에 대한 책임, 작품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 거잖아요. 우리 멤버 간의 사이가 틀어질 순 있죠. 하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내어주었기에 작품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 작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우리 안에서 무겁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란: 연분홍치마가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됐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게 솔직한 답이고요. 다만 나를 움직이는 힘은 ‘불만’인 것 같아요.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아, 이게 왜 안 됐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다음에 저렇게 하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과정이 저에게 동력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나에게 그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다음 기회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연분홍치마라는 공간에서 이어간다.’였어요.

연분홍치마의 넝쿨 사무국장 (제공: 연분홍치마)    


 
-연분홍치마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어떤가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궁금해요.
 
넝쿨: 연말, 연초 회의 때 뭘 하자고 정한다기보다 멤버 중 누군가 어떤 영감이 오거나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일단 얘길 해요. ‘이런 이런 아이디어가 있다. 관련해서 자료 조사를 해 보겠다’고요. 그런 식으로 알려주거든요.
 
일란: 그래서 대체로 모든 작업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갑자기 ‘무언가 하겠다, 이걸 합의하자’는 게 아니라, 멤버들이 서로 하는 활동을 알고 있고 그걸 공유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까요. 이런 과정을 통해 모두가 자연스럽게 설득이 되고, 제작으로 이어지는 거죠.
 
-연분홍치마의 특수한 위치에 대해 얘기하셨는데요. 예술의 자율성, 표현의 자유를 얘기할 때 소위 ‘PC함’(정치적 올바름)이 예술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연분홍치마는 예술창작 단체지만 사회운동 단체란 말이죠. 이것이 충돌하거나, 작품을 만드는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나요?
 
-김일란 감독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라고 답했다.
 
넝쿨: PC해야 한다거나, 이것 때문에 어떤 표현을 못 하겠다는 고민보다 오히려 우리의 표현이 오독되는 경우를 고민한 적은 있어요. 우리의 생각의 흐름, 판단의 근거가 모여서 어떤 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컷을 고른 건데, 그것이 논쟁이 된다면 그건 PC함의 문제라기보다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거니까요. 그런 점에 대한 고민은 하곤 했죠.
 
-그럼 ‘PC함’, 윤리적 기준 등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나요?
 
일란: 개인적으로 작품을 만들 때 시민운동에서 합의된 어떤 윤리가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가이드로 두고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어떤 쟁점을 영화에서 드러낼 것인가 생각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날 대신해서 고민해서 만든 거니까, 오히려 감사하죠.
 

연분홍치마의 최신작인 다큐멘터리 영화 〈에디 앨리스〉(김일란 감독)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    


-연분홍치마의 가장 최신작인 〈에디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일단 전 〈에디 앨리스: 리버스〉만 본 상황입니다만(*이 작품은 〈에디 앨리스: 리버스〉, 〈에디 앨리스: 테이크〉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이전 연분홍치마 작품들과 무언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란: 이렇게 말하는 게 완전히 적절한 표현 같진 않지만, 저에게 〈에디 앨리스〉는 ‘개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어요. 연분홍치마는 조직의 비전 그리고 사회운동의 지형 안에서 다큐가 해야 할 일들을 늘 고민하며 다큐를 만들었어요. 늘 함께하는 연대 단위가 있었고요. 그러니까 물론 이전 작품에도 나 개인의 목소리나 취향이 분명 들어갔지만, 지금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하며 제작했죠. 하지만 이번 〈에디 앨리스〉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사적이고 개인화된 위치에서 만든 작업이에요. 외부의 연대 단위 활동가들에게 ‘어떤 게 필요하냐’고 묻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 과정이 더 힘들었나요? 더 재미있었나요?
 
일란: 둘 다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오히려 비빌 언덕이 있었죠. 외부에 물어보면서 만들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안정적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은 나를 더 내보이는 작품이었다고 할까. 이전 작품과는 마음가짐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물론 연분홍치마의 작품이지만 김일란이 만들었다는 게 좀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들으니 〈에디 앨리스〉가 연분홍치마의 변화의 기점이랄까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앞으로 연분홍치마가 하고 싶은 일, 그리는 미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넝쿨: 연분홍치마는 참 이상한 단체예요.(웃음) ‘어떻게 해. 다음 달부터 활동비(월급)가 없을 것 같아.’하면 갑자기 단체에 알바가 들어와서 돈이 생겨요. 그런 식으로 굴러왔거든요. 그래서 연초에 1년 예산을 짜서 ‘이렇게 써 보자.’ 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다다음 달이면 돈이 없어, 알바를 구해오자!’ 이런 식이죠. 그러니까 제 꿈은 1년 예산 계획을 세우는 거예요. 우리한테 정기후원인이 어느 정도 있어서 안정적인 돈이 있으니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그런 상황이요. 종종 정말 이 단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지 신기할 정도거든요. 안정적인 작업 조건을 만들고 싶어요.
 
일란: 역할 분담에 조금 변화를 주고 싶어요. 이제 변규리 감독과 넝쿨 사무국장이 연분홍치마의 색깔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의 역할은, 그들이 하는 일을 의미화하고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연분홍치마의 활동들을 조금 더 언어화하는 거요. 그러면서 연분홍치마의 외연을 확장하고 싶어요. 그게 제 역할인 것 같고요. 앞서 ‘개인이 되어간다’는 말을 했는데, 내가 주된 색깔이 되어간다는 게 아니라 연분홍치마 색깔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말이기도 해요.
 
넝쿨: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카데미 같은 것도 하고 싶어요. 그걸 통해서 연분홍치마의 울타리도 넓히고 싶고, 단체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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