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사태 때 취재진 장사진...보도 자유만 이야기할 순 없다"

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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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②] 최연송 한국영상기자협회장, 나준영 전 한국영상기자협회장
공인 취재·AI영상 기준 담아 세 번째 ‘영상 보도 가이드라인’ 펴내
“가이드라인, 영상제작 저널리즘 윤리 위해 대학 교재로 채택됐으면”
▲ 세월호 참사 다음달인 2014년 5월20일자 한국영상기자협회(당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서 낸 신문 '카메라기자' 1면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에 대해 성찰하는 글을 실었다
세월호 참사는 언론 참사이기도 했다. 영상기자들도 유족과 희생자들에게 무분별하게 카메라를 들이댔다가 비난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는 기존 관성대로 취재해선 안 된다는 경고였다. 내부 성찰 끝에 2018년 한국영상기자협회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현장 영상기자들의 고민과 함께 각종 규정과 판례, 학자들의 조언까지 담았다. 2020년에 개정판으로 확장했고, 2025년 다시 개정판을 냈다.

통상 언론단체에서 만든 취재 가이드라인은 큰 원칙을 중심으로 A4 1~2장 분량이지만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은 부록 포함 290쪽에 달해 책으로 묶었다. 지난 2월까지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을 지낸 나준영 MBC 영상기자는 세 번의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작업에 모두 참여했다. 나 기자가 토대를 닦으며 1년4개월 정도 준비해 지난달 발간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2025년 개정판이 최연송 현 영상기자협회장의 첫 결실이 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5일 두 영상기자를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각종 취재·보도 윤리규정이 있지만 현장 기자들이 적용하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영상기자협회는 상을 줄 때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수상 기준으로 삼고 있다. 화재 현장을 드론으로 촬영할 경우 소위 그림이 좋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서는 이를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나 기자는 "무선 사용이 많아져 현장 혼선이 생기면 또 다른 피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선 상을 줬더라도 우리 협회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어, 보도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돼 다른 곳에서 상을 받았지만 우리 협회에선 상을 못 받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영상기자들이 스스로 '필요한' 족쇄를 채우는 작업이다.

▲ 서부지법에 난입해 부수는 시위대의 폭동 현장을 흐림처리한 YTN, KBS, SBS, 연합뉴스TV 보도 갈무리
지난 1월19일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전하는 방송사들이 블러(흐림)처리를 해서 뉴스를 전했다. 다음날 협회장이던 나 기자는 서부지법 불법시위 참가자는 초상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공지했고, 이 내용은 2025 개정판(60쪽)에 자세하게 실렸다. 집회·시위 참가자의 초상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례와 함께 "불법적 시위자들의 초상권 보호가 제한된다는 점 외에도 역사를 기록한다는 영상 저널리즘 차원에서 보더라도 현장 상황은 있는 그대로 기록되고 방송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폭력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법에 규정한대로 기자라는 '완장'을 착용하라"고 규정했다.

최 회장은 과거 이라크전쟁 당시 바그다드 취재경험담을 꺼냈다. "당시 미국 CNN 숙소에 어떤 아저씨가 수영장에 있길래 누군가 알아봤다. CNN 소속 안전담당자로 취재진 안전을 보호해주는 일을 맡았고 특공대 출신이었다. 우리는 주먹구구식으로 기자들이 맞고 사태가 악화되면 뭔가 처방하려다 지나가면 잊히는 사태가 반복된다." 영상기자들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방송사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대목이다.

▲ 최연송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이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최 회장은 공약으로 '지역·소규모 회원사 지원 강화'를 내걸었다. 최 회장에 따르면 서울에선 보통 영상기자·취재기자·오디오맨·차량기사까지 4명이 취재를 가는데 지역방송사에선 오디오맨이 차량기사 역할을 하고 일부 더 열악한 상황에선 영상기자가 운전하며 짐을 다 들고가 취재를 하기도 한다. 과거 부산의 한 영상기자가 혼자 취재하다 사망한 경우가 있고 얼마 전에도 한 지역방송사 영상기자가 혼자 취재하다 옆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걸 보지 못해 얼굴에 큰 부상을 당했다.

지역방송사들이 경영난 등을 핑계로 비정규직인 오디오맨 인력을 줄이면서 영상기자들이 위험에 더욱 노출되는 것이다. 나 기자는 "지역방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재난 취재인데 방송사들이 영상기자 한 사람에게 맡기며 업무 강도를 높이는 건 흐름에 맞지 않는다"며 "필수인력을 빼서 비용 절감을 해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경영이 어려워질 때 제일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비정규직부터 자르는 건데 그건 경영 효율화가 아닌 비열한 행위"라고 했다.

보통 이러한 비정규직 인력으로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일부 오디오맨은 실무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비정규직이지만 이 일을 경험해보며 기자나 PD를 준비하기도 한다. 나 기자는 "이들도 잠깐 지나가는 경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계엄의 밤, 오디오맨들도 군인들과 사다리를 뺏으며 힘겨루는 장면이 있다"며 "두려우면 빠지면 되지만 함께 했다는 게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영상기자협회는 최근 오디오맨 실태조사를 마치고 전국 방송사 경영진에 경고 공문을 보냈다.

올해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개정판을 만들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을 물었다. 공인 취재(45~53쪽)와 인공지능(AI) 활용 뉴스(154~161쪽) 부분을 추가·보강했다고 했다. 나 기자는 "공인을 규정한 법령은 없지만 최소한 공인의 범주를 명확히 하고자 훈령을 참고했다"며 "물론 이러한 규정보다도 공인의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라고 했다. 이어 "공인이라도 공적 활동을 취재·보도해야지 사적영역이나 가족까지 집중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나준영 MBC 영상기자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면서 '2025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나 기자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내연녀 논란 당시 기자들이 집 앞에 캠핑용 의자까지 사다 기다리며 사실상 감금했고 조국사태 때도 취재진이 아파트까지 가서 장사진을 쳐 주민들과 갈등이 있었는데, 취재·보도의 자유만을 이야기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배우 이선균씨 등을 예시로 들면서 "연예인도 수사기관에 소환될 때 첫 1회 정도 취재해야지 괴롭히기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AI 영상 부분은 최근에 추가된 고민이다. 기존에 나온 AI 규정들보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이지만 더 보완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과 얘기 중인데 AI 관련해 두 협회가 내년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고 관련 세미나도 각각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를 영상으로만 구성할 수 없으면 그래픽을 사용하는데 AI로 정확하게 구사하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며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하는 장면을 잘 쓴 사례가 있는데 비행기 기종, 지형 묘사가 정확해 상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 지난 8월 KBS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 수송기 추정 잔해를 발견해 양국이 공동수색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인공지능(AI)로 사고 당시 상황을 재현한 모습. 해당 보도로 한국영상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사진=KBS 보도 갈무리
반면 부정확하게 재현하는 건 문제다. 2023년 이달의 영상기자상 수상작 중 제주 4·3을 다룬 작품이 선정됐다. 나 기자는 "4·3 희생자 자녀들이 70여년간 받은 고통을 담아 직권 재심이 이뤄진 사건을 다룬 매우 훌륭한 작품인데 당시 상황을 AI로 재현했지만 1948년 제주 상황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심사위원회는 토론을 거쳐 "AI 재현 부분이 리얼리티를 해쳤다는 평이 있다"는 심사의견을 명시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나 기자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효율과 경제성으로 인해 AI를 더 쓰고 싶은 욕구가 크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이라며 "현장 기자가 직접 취재하고 팩트를 검증해 보도한다는 시청자·독자의 믿음을 간과하고 효율성만 찾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그 외에도 잠입·위장 취재, 라이브 취재보도, 취재질서와 포토라인, 취재원 제공 영상 사용 등 영상취재와 편집 가이드라인을 자세하게 담았다. 또한 전쟁·재난·범죄·자살·수사와 재판·어린이·장애인 등 분야별 가이드라인과 보도영상 자료화와 관리 방법도 소개했다.

국내 유일 영상보도 전문지침서인 만큼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최 회장은 "협회에서 코로나 때 중단했던 대학생 명예기자를 다시 뽑아 세미나를 진행한다"고 했다. 나 기자는 "영상제작에는 관심이 많지만 저널리즘 윤리 관련 강의가 정규 커리큘럼에 있는 대학은 별로 없는데, (가이드라인이) 대학 교재로 채택됐으면 좋겠다"며 "개인이 유튜버·1인미디어가 되는 시대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연차 기자들은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입사 전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감수성이 높지만 연차가 올라갈수록 인지가 부족하다는 연구가 있다"며 "고연차 기자들도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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