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파·동맹파 갈등 보도'가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

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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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13. 오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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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때 보수진영서 여권 향해 ‘자주파 vs 동맹파’ 비판…이재명 정부 들어 재등장
최종건 교수 “매우 유감스럽고 오래된 이분법...한쪽 프레임만 갖는 것 적절한가” 반문
▲ 이재명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자주파와 동맹파로 나뉘어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 최근 언론보도에 대해 "오래된 프레임"이자 "허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외교·안보라인의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설은 참여정부 출범 초부터 등장했다. 최초의 정권교체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의 한미관계는 기존 정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자 이에 맞춰 한미동맹을 재조정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에서 '시대적 요구에 맞는 한미동맹 재조정'을 주장했고 이런 주장이 자주파로 불리기 시작했다. 보수진영 입장에서는 '자주파'가 '혈맹'인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시작했다.

참여정부 출범 초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종석 전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서주석 전 NSC 전략기획실장, 서동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과 함께 외교 4인방으로 불렸다. 나머지 인사들은 자주파로, 윤 전 장관이 이들과 대립하는 동맹파로 분류됐다. 이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 대한 평가를 비롯해 외교안보라인 사이의 이견을 두고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 다시 말하면 여권 내 갈등 프레임으로 사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론 윤 전 장관을 포함해 청와대와 여권은 자주파와 동맹파 분류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다 2006년 최재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기밀 문건을 공개하면서 갈등설이 극에 달했다. 전략적 유연성 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해당 문건을 공개했는데 당시 보수언론에선 '강경 자주파가 온건 자주파를 공격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동맹파로 돌아섰다'는 등의 보도를 내놨고 보수정당에서도 '자주파가 한미동맹을 해체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 2006년 4월5일자 조선일보 사설
당시 한미 간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한미동맹 현대화와 방위비 부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회복),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 한미 관계의 변화를 예고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미동맹의 틀이 공고하던 상황에서 정권교체와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관계의 일정부분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민주당 계열 정부는 '동맹 해체 아니냐'는 공격에 상시 노출된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최재천 의원조차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에 대해 "그렇다면 난 어느 파냐"며 이러한 이분법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 노선을 내세우며 집권한 동시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과 방위비 분담 등 압박에 놓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유화적 태도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닫아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다시 현 정부 외교라인의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인사 출신인 이종석 국정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자주파로 분류하고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조현 외교부 장관,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동맹파로 분류되고 있다.

이에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상당히 허상 같은 이야기로 현장에서 보면 자주적인 역사의식 없이는 동맹이 굴종으로 흐른다"며 "동맹이라는 현실주의적 선택 없이 자주라는 말이 매우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자주파·동맹파 갈등이) 매우 로맨틱하게만 들린다"며 "우리는 이미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국제적인 국가가 되어 있고 한편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주도적으로 책임져야 할 위치가 있는데 20년 전(처럼) 동맹파냐 자주파냐, 마치 외교·안보의 현실이 하나의 극단의 시각으로 이루어져야만 자신들이 대변하는 국가 이익이 완성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고 오래된 이분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자주파·동맹파 갈등이 여권 내에서 나온 점에 대해 우려했다. 최 교수는 "이걸 엄격하게 나무라고 싶은데 진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그리고 자주와 동맹파로 나눈 프레임이 소위 보수언론 보수층에 등장하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는데 민주당 내부, 민주당의 회의에서 나왔고 언론이 받아서 증폭했다"며 "현재 정부에서 매우 어렵게 일하는 여러 분들에 대한 음해성 공격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사진=KTV이매진 갈무리
최 교수가 지적한 민주당 회의는 지난달 26일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였다. 이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대통령이 앞으로 나갈 수 없도록 붙드는 세력이 지금 정부에 있다. 소위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며 외교안보라인 개편을 주장했다. 이는 외교관 출신인 위성락 실장과 조현 장관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됐고, 이후 다수 언론에서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으로 미국과 협상이 더 난항을 겪고 있다는 논조로 흐르기 시작했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29일 "걱정 많은 국민은 이러다 대북 정책이 산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며 "관세전쟁에 북핵 리스크까지 외교·안보가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대북관 파벌 논쟁까지 보태야 하겠는지 혀를 차는 소리가 높아진다"고 지적했고 뉴스1은 지난 5일 "다같이 힘을 합쳐 해법을 모색해도 부족할 판에 공개석상에서 상대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는 저의는 소신이 아닌 권력 욕심으로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며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을 비판했다. 그외에도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을 다루는 수많은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보도의 근거는 정동영 장관이 "(남북은) 사실상 두 국가"라고 했지만 위성락 실장이 "두 국가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밝힌 'E·N·D(교류, 관계정상화, 비핵화) 이니셔티브'에 대해 두 국가론과 북핵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위 실장은 "E·N·D는 통일부의 제안"이라고 통일부를 에둘러 비판한 것 등이 있다.

관련해 최 교수는 "(외교안보라인 사이)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 우격다짐일지 아니면 정말 정책 집행자들 간 의견의 차이는 있으나 결론에 도달하면 밀고 일사불란하게 집행하느냐의 문제인데 통일부는 통일부대로 외교부와 국방부는 각각 부처의 입장이 있을 것"이라며 "안보실을 중심으로 이것이 코디네이션이 되고 그 이후에 집행하는 것이 민주국가 내의 외교·안보 정책 집행 절차"라고 했다. 부처 특성상 통일부는 상대적으로 대북 유화책, 외교부나 국방부는 한미동맹에 방점을 둘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는 취지다.

최 교수는 "지금 북한의 경직된 태도 앞에서 또 동맹인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 앞에서 우리는 한쪽 프레임만 가지고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가라는 반문을 던지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에게 3500억 달러를 캐시로 내놓으라고 하는 상황이고, 북한은 죽어도 우리하고 대화하지 않고 우리를 적대적 외국처럼 취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의미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매우 문학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자주와 동맹이 어떠한 현실적 대안을 내놓을 수 있냐"며 "3500억 달러 미국이 원하는 대로 주냐, 동맹의 강화를 위해서. 아니면 북한이 저렇게 미국과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놓고 핵무장을 완성했다라고 대화를 단절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조건 남북 대화만 외쳐야 돼냐, 그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올드 프레임, 오래된 전축은 좀 버려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언론에서도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설이 무용한 담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경제는 지난 8일 <'자주파·동맹파'…누가 부질없는 갈등을 부추기나>에서 "자주파·동맹파라는 말 자체가 너무 오래된 비상식적인 접근"이라며 "자주파든 동맹파든, 국익을 끌어올릴 정책과 비전을 실용외교를 구사하려는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되는 일로 두 국가라든지 동맹파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는 식의 언론의 먹잇감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보도했다.

해당 논란에 대해 위성락 실장이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지난달 29일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관련 질문에 "저는 제가 무슨 파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가 하는 일은 지금 주어진 여건에서 최적의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그것을 선택해 실행하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의 E·N·D 구상에 대해) 우리가 수도 없이 이야기한 것으로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큰 좌표와 목표만 3개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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