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재정중독, 남의 일 아냐" 보수언론의 마크롱 활용법

박재령 기자
입력
수정 2025.10.01. 오후 5:34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 국가부채 근거로 한국 긴축재정 주문… “복지 지출에 대한 우려 지나쳐”
▲ 지난 7월 영국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사진=flickr
국가부채에 대한 갈등으로 총리 불신임 등 정치적 혼란에 빠진 프랑스를 놓고 한국이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논조가 신문 대다수를 차지했다. 국가별로 예산 및 복지 상황이 다른데 한국이 재정을 아껴야 한다는 쪽으로만 논조가 쏠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부자감세'에 나서 여론이 악화됐다는 언급은 다수 언론에서 찾기 힘들었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이 프랑수아 바이루 내각에 대한 불신임을 가결했다. 올해 기준 3조4000억유로(5600조 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루 총리가 복지 등을 줄이는 예산 삭감안을 내놓자 여론이 거세게 반발한 결과다.

프랑스 재무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 개입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장 한국도 프랑스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10일 <긴축 호소한 佛 총리 불신임…재정중독 이렇게 무섭다> 사설에서 프랑스를 "'재정 중독'이 얼마나 치유가 힘든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뼈저리게 새겨야 한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11일 <'빚 수렁'에 빠진 프랑스 정국 혼란, 남의 일 아니다> 사설에서 "세계 7대 경제 대국 프랑스가 국가부도에 처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며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당장 경기회복이 급하더라도 과도한 지출에만 기댔다가는 외환위기 같은 파국이 또 올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 지난달 15일자 서울신문 사설.
서울신문도 지난달 15일 <국가신용등급 역대급 추락 佛… 남의 일 아닐 수도> 사설에서 "프랑스의 사례는 무분별한 재정 지출과 과도한 복지 의존이 불러올 위험을 보여 주는 반면교사"라며 "민생 회복과 성장 동력을 위한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구조개혁을 반드시 병행해 재정 건전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가 1997년 한국처럼 IMF 구제를 받을 가능성은 적다. 유로화가 기축통화이기도 하고 프랑스가 위기에 빠지면 유럽 경제 전체가 흔들려 유럽연합 등이 사전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 한국이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시점으로는 과장됐다. 프랑스 정부 측의 발언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던진 수사에 가깝다.

프랑스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114%다. 한국의 올해 국가채무비율은 기획재정부 기준 49.1%,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47.2%다.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한국의 부채 비율이 높아지는 편이라 하더라도 수치 차이가 아직은 크다.

복지지출 비율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GDP 대비 15.5%로 OECD 2019년 평균(20.1%)보다도 4.6%p 낮았다. 반면 프랑스의 사회보장지출(social protection benefits)은 2023년 기준 GDP 대비 31.5% 수준이다. 프랑스 내 여론에는 이러한 복지 수준이 후퇴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포함돼 있다. 프랑스의 상황을 근거로 지금 한국 정부에 긴축재정을 주문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복지 체계 등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 지난달 22일자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한겨레 칼럼.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달 22일 <'프랑스 복지중독론'을 반면교사 삼자고?> 한겨레 칼럼에서 "유럽에서 정치·경제 이슈가 터지면, 언론은 복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제는 유튜브의 '전문가'들까지 가세하여 복지 지출이 얼마나 국가부채를 늘렸고, 복지에 중독된 국민들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 강변한다"며 복지 지출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최영준 교수는 "2007년의 프랑스 복지지출은 GDP 대비 28.3%였고, 경제위기 직후 2009년에 31%였으며, 2024년에는 30.6%였다. 부채 증가 수준과 비교하면 너무 미미한 증가"라며 프랑스 국민들의 반발이 복지 지출이 높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최 교수는 "먼저 생활이 어려워졌다. 2007년 이후로 경제성장률이 1%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낮았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급등과 고금리로 인한 실질 구매력 하락, 지역격차의 심화 등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부자감세'에 나선 데 대한 비판이 주요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부유세를 폐지하고, 자본소득세를 30%의 단일세로 인하했으며, 법인세율을 33%에서 25%로 낮추었다"며 "이렇게 부자감세는 과감했으나 재정안정을 위해 연금, 보건, 복지, 교육 등 서민과 중산층에 관련된 예산을 줄이니 국민들의 불만이 폭증했던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복지 비판론자들의 지출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다"며 "프랑스의 노령 지출(노령연금 등)은 12.4%로 우리의 3.6%에 견줘 GDP 대비 9%p 가까이 높다. 또한 2022년 OECD 자료에 따르면 퇴직 전 평균소득 대비 공적 연금의 급여 수준은 프랑스가 72%인 데 반해 우리는 그 절반 수준인 36%다. 우리가 프랑스 공적 연금 수준으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일 바이루 총리 사퇴 하루 만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로이터는 신임 총리 임명을 놓고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고 정년을 연장하는 등 친기업 개혁 의제를 포기하지 않고 소수 정부를 밀어붙이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라고 평가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