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보도자료 밀어내기” 지기자수첩] 디스패치, 이재현 CJ 회장 ‘은밀한 오디션’ 여성 동원 파티 보도
언론계 “보도자료 밀어내기” 지라시 돌아…일부 매체, CJ 홍보 임원 거론하기도
CJ 홍보라인 비난으로 끝낼 일인가, 보도자료 받아쓰고 기사 쉽게 내리는 언론 더 문제
디스패치는 지난 25일 <"검스에 킬힐을 좋아하십니다"…CJ 이재현 회장, 은밀한 오디션>이란 제목으로 2개월간 이재현 회장이 참석한 DJ파티에 대해 취재한 결과를 보도했다. 파티에 참석한 여성들은 몸매 등을 평가받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복장을 하면 좋을지 지시를 받기도 했다. 이 회장 측에서는 파티에 참가한 여성 1명당 200만 원을 줬는데 파티 매니저가 50만 원을 받고 참가자들은 15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이 회장 관련 디스패치 보도에 대해 CJ그룹 측 관계자는 28일 미디어오늘에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며 "드릴 입장이 없다"고 했다. 디스패치 보도를 시작으로 철저한 수사 등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이 회장 측의 입장과 사과가 빨리 나올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해당 보도가 나온 지난 25일 기자들 사이에서는 CJ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서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있다는 아래 내용의 지라시가 돌았다.
"받/ CJ 전 계열사 동원 보도자료 쏟아내는 중
-CJ, 지역아동센터 100곳과 추석 명절 나눔, 쿠킹클래스 진행
-이재현 CJ그룹 회장, 글로벌 현장경영 신영토 확장 박차
-CJ대한통운, 로보티즈와 휴머노이드 AI 로봇 실증
-CJ제일제당, K매운맛 '습' 제품 포트폴리오 라인업 확대
-CJ제일제당, 비비고 생선구이 새 엠블럼 도입
-CJ온스타일, 채정안 디렉팅 브랜드 채컬렉티브 모바일 TV 동시출격
-CJ올리브네트웍스, 찾아가는 AI SW 창의캠프 성료
-CJ ENM, AI 애니메이션 캣 비기 누적 조회수 1300만 돌파"
CJ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보도자료로 디스패치 기사를 밀어냈는지 판단하려면 평소보다 보도자료 양이 많거나 시의성이 없는 보도자료가 많은지 살펴봐야 한다. 일단 지라시 내용 중 CJ온스타일에서 낸 채정안 '채컬렉티브' 관련 보도자료는 디스패치 보도 전날인 지난 24일자 자료다. 또한 CJ대한통운이 낸 'AI휴머노이드 로봇'과 CJ제일제당의 K매운맛 '습' 제품 관련 보도자료는 디스패치 기사(25일 오전 11시 보도)가 나오기 전인 25일 오전 8시~10시 사이에 나온 자료다.
CJ그룹 홈페이지를 기준으로 보면, 디스패치 기사가 나온 25일자 CJ계열사의 보도자료의 개수는 5개, 26일 4개로 보도 전인 24일자 6개, 23일자 4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홈페이지에 올라오지 않은 CJ발 기사도 있긴 하지만 통상 계열사당 2~3일에 1개씩 보도자료를 내는데 25일 이후 그 수가 크게 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CJ그룹 홍보라인에서는 언론계와 홍보업계에서 돌았던 해당 지라시 내용을 인지했고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음에도 불필요한 논란이 커질까 공식 대응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CJ그룹 홍보부서의 특정 임원을 거론한 기사도 등장했다. 세이프타임즈는 지난 26일 기자칼럼 <CJ 이재현 회장의 '추악한 파티'와 눈감은 언론>에서 "CJ는 이번 의혹 보도가 나가자 세이프타임즈에 전화를 걸어 기사 삭제와 수정으로 압박했다. 불리한 기사는 지우고, 유리한 기사는 '좋은 내용으로 덮어씌워달라'고 했다"며 "심지어 진보 매체에 몸담았던 전직 언론인까지 가세해 '여론 관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고 썼다.
기사가 삭제된 곳 중 하나는 스포츠경향이다. 지난 26일 스포츠경향은 <"이재현 CJ회장 '은밀한 파티' 조사하라" 고발>이란 제목의 기사를 단독보도했다. 이 회장의 파티가 법을 위반했다며 한 시민이 국민신문고에 조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했다며 민원 내용을 인용한 기사다. 해당 기사는 28일 현재 삭제된 상태다.
스포츠경향의 이러한 조치는 적절하지 않다. 한 시민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한 내용은 비공개 사안이니 이를 제보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적 공분이 커졌거나 정부나 수사기관에서 어떠한 조치가 나왔다면 기사 가치가 더 컸겠지만 한 시민이 민원을 넣은 것만으로는 기사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 측 입장을 담거나 추가적인 내용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포츠경향의 판단으로 기사를 쓸 수 있다. 문제는 CJ 쪽에서 대응했다고 기사를 바로 내리는 행위다.
CJ 측에서는 '사주 리스크'가 발생한 상황에서 광고 등으로 기사 삭제 거래를 요구할 수 없고 요구하지도 않는 것이 대응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 대기업의 전례를 봐도 만약 기사 수정이나 삭제를 요구하며 광고나 협찬을 제공할 경우, 소문이 나서 금방 여러 매체의 표적이 돼 광고·협찬 요구를 받을 수 있어서다.
공교로운 점은 스포츠경향이 단독보도를 내렸고, 세이프타임즈의 해당 칼럼을 쓴 발행인이 경향신문 출신이며 칼럼에서 CJ 홍보 임원 중 '진보 매체에 몸담았던 전직 언론인'을 거론했는데 CJ그룹 홍보라인 책임자 중에는 실제 경향신문 출신이 있다. 세이프타임즈가 이 회장 기사를 삭제한 언론에 대해 원론적인 비판을 했더라도 같은 언론사 출신이니 광고·협찬을 해달라는 취지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대목이다. 28일 기준 세이프타임즈 홈페이지를 보면 삼성전자, LG, SK하이닉스, 한화 등 여러 대기업이나 공기업 배너 광고가 있지만 CJ 관련 광고는 없다.
CJ그룹 측이 통상적인 기사 대응을 넘어선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까? 실체적 진실은 '선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CJ그룹 측 입장과 세이프타임즈의 칼럼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사를 쉽게 쓰고, 쉽게 내리는 언론에 있다.
물론 특정 기업이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적절하진 않지만 그런 요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주요 사실관계가 틀리지도 않은 기사를 내리는 건 언론 스스로 언론의 신뢰를 깎아먹는 짓이다. 설사 '사주 리스크'가 있는 대기업에서 보도자료를 대량으로 내더라도 이를 받아쓸지 판단하고 최종 여론을 만드는 것도 언론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대기업의 광고협찬비로 언론매체가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 홍보팀 직원과 기업 담당 기자의 관계로만 보면 형식상 기자가 '갑'의 위치에 있다. 홍보실만 비난해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대다수 매체는 디스패치 보도를 인용하지 않고 있고 CJ에서 광고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부 매체들만 디스패치를 인용해 보도하고 있는 게 언론계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