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 3500억달러, 현금으로 내면 한국 금융위기 직면”
“북핵 동결 수용, 트럼프·김정은 상호 신뢰 가진 것으로 보여”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한미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를 인출해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판단하고 거절의 뜻을 밝힌 것이다.
한국은 지난 7월 말 대미 관세율을 애초 미국 요구인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한국은 투자금을 보증 한도로 여겼지만 미국은 현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종결되지 못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했는데 이번 이 대통령 인터뷰를 보면 미국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한국 노동자 구금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게 될 수 있다"면서도 "이번 사건이 의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미국은 사과했고 합리적인 대책을 모색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추진 중"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동자 체류를 허용한 것에 대해서도 긍정 평가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중요한 건 이런 군사력, 국방력, 국력을 가지고도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고 썼다. 이는 이 대통령이 과거에도 밝혀온 자주국방 관련 주장이긴 했지만 보수야당의 반발이 예상되는 발언이고 실제 국민의힘 여러 의원들이 이 대통령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다만 해당 발언은 국내를 겨냥한 발언으로 보기 보다는 관세협상 이후 미국과 방위비·안보 이슈로 협상을 이어가기에 앞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한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관세협상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익을 과하게 침해하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유엔총회 일정 전 관세와 안보 두가지 의제에 대해 모두 단호한 입장을 내고 순방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또한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은 분명한 이익이 있다"며 "결실 없는 최종 목표(비핵화)를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달성할 것인지 문제"라고 했다. 이는 북한의 2022년 핵보유국을 선언을 인정하고 북미 대화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판단이다. 이 대통령은 2019년 결렬된 북미 핵협상 재개를 요청하는 말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이 대통령은 "어느 정도 상호 신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BBC 인터뷰 공개와 비슷한 시점에 김정은 위원장의 21일자 최고인민회의 연설이 22일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공개됐다. 김 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비핵화라는 개념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했다"며 "우리가 핵보유국으로 변천되게 된 것은 우리 국가의 생존이냐 사멸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취한 필수불가결의 선택"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핵보유를 그 어떤 경우에도 다칠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공화국의 최고법에 명기했다"며 "이제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우리더러 위헌행위를 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즉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비핵화를 당장의 목표 내지 대화로 전제하지 않은 채 '핵 동결'만을 요구하며 북에 대한 압박 강도를 낮춘 것이다. '핵 동결'에서 나아가 '핵 감축'을 한 뒤 최종적인 단계가 '비핵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북한도 미국과 대화 가능성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설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치 이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한 것처럼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대북 라디오 방송 중단 결정에 대해서는 "(이 방송이) 실질적인 효과가 거의 없다고 판단한다"며 방송의 이점이 북한 정권을 자극하는 대가를 상쇄할 만큼 크지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남북 간 신뢰 회복"이라며 "특히 지난 정부의 대북 입장이 매우 적대적이었기에 더욱 그러한데 이러한 조치들이 북한의 대화 복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