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 좁혀… 통화스와프는 협의 중
트럼프 또 “선불”… 보고 못 받은 듯
한·미 관세 협상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10여일 앞둔 상황에서 중대 분기점을 맞았다. 우리 정부의 요구 사안에 대해 미 측이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면서 세부 협상 합의에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정부 경제·통상 분야 수장들도 미국에 집결해 최종안 구성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6일 방미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환시장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부분에서 미국 측과 상당 부분 이해의 간극이 좁혀졌다”고 말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이전엔 미국 내 관련 부서들이 서로 긴밀히 소통하는 인상을 안 보였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도 재무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쪽, 상무부가 아주 긴밀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측은 그동안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 대부분을 달러화로 일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정부는 달러화로 전액 일시 지급할 경우 외환위기에 직면할 가능성까지 예상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정부는 한 해 투자 가능 금액이 최대 300억 달러 수준이라는 점을 설득해 왔다. 결국 미국이 최근 일본과 다른 한국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면서 실무 협의가 급물살을 탄 상태다.
일각에선 양국 협상이 최종 합의에 근접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미 투자 금액을 10년간 약 300억 달러씩 분산 투자하는 방법, 달러화 환전 없이 원화로 미국에 투자할 수 있는 계좌를 신설하는 방안 등 외환시장 변동성을 최소화할 방법이 모색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무제한이든 유제한이든 통화스와프는 미 재무부와 우리 사이에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국은 국익 최우선 원칙에 따라 이견을 좁혀가고 있다”며 “통화스와프 문제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와의 통화스와프를 글로벌 유동성 위기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체결해 왔다. 달러를 공급받는 권한을 주는 것 자체가 국가 간 형평성 등에 영향을 주는 정무적 판단 대상이다. 주무 기관인 미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에 부정적이다. 양국은 통화스와프 체결 부담을 덜면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협상 타결까지는 ‘트럼프’란 큰 변수가 남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한국이 대미 투자금 3500억 달러를 선불(up front)로 지급키로 했다고 또 주장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협상이라는 게 대통령에게 실시간 보고하고 보고받는 방식이 아니다”며 “(협상 내용을 공유받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 스타일대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