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병장 월급 깎으면 간부 지원 늘어날까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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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2. 오전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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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병장 월급 1만원 돌파, 올들어 200만원 넘어
병사월급 인상에 여론 부정적…간부 이탈 원인 지적
군 기피는 미래 불확실성 탓, 복지시스템 근본 재설계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91년, 병장 월급이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다. 3년 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병장 월급이 7천500원이었으니, 꽤 파격적인 인상이었다. 지금처럼 결혼식 축의금이 5만원, 부의금이 10만원이던 시절이었다. 누구 말대로 1원 한 장 받지 않고,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3년의 청춘을 나라에 바쳤던 것이다.

위국헌신 군인의 길 다짐
(영천=연합뉴스) 29일 오후 경북 영천시 육군3사관학교에서 열린 제59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 생도들이 경례하고 있다. 2024.2.29


부모의 빽을 동원하거나 부동시·디스크·정신질환 환자로 속여 병역 면제를 받은 신의 아들들을 부러워하면서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밤낮 없이 구타의 공포에 떨고, 돈도 빽도 없는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그 적은 월급을 꼬박 모아 부모님께 부쳐드리던 병사들이 적지 않았다. 군에 가서야 비로소 철든 아들의 효심이 담긴 돈이었다.

세월이 흘러서도 경조사 봉투의 두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병장 월급만큼은 25년 전의 200배인 200만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세금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이 변화를 마냥 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러다 나라 곳간이 거덜난다"는 걱정부터 "군대 편해졌는데 왜 그리 큰돈을 주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도 병사 월급 인상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부사관이나 소위보다 높아 초급 간부 지원율이 떨어지고 이탈이 심화하고 있다는 식이다. 최근엔 육사 생도의 약 3분의 1가량이 자퇴하거나 임관을 포기했다는 통계가 공개되자, 그 원인 중 하나로 병사 월급 인상이 거론되기도 했다.

'나는 육사 출신이다'
(서울=연합뉴스) 2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육군사관학교 제75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한 졸업생도가 후배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19.2.27


과연 병장 월급 200만원이 간부 지원 기피의 원인일까? 병사 급여는 월급이라기보다 의무 복무에 대한 격려금에 가깝다. 어차피 군에 가야 하는 사람과 군에 인생을 건 직업 군인의 처지를 같은 기준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진짜 문제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간부의 군 복무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에 있다.

특히 육군은 간부로 쌓은 경력이 제대 후 사회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병과가 거의 없다. 해병대는 '몇 기냐'는 인맥과 '영원한 해병'이라는 자부심이라도 있지만, 육군은 기술적 전문성이 부족해 소령이나 중사로 진급하지 못하면 곧 실업의 문턱에 선다. 게다가 요즘은 단톡방을 만들어 아들의 안전을 비는 '헬리콥터 엄마'와 '마편(마음의 편지)'으로 간부 진급을 가로막는 철없는 병사들을 감싸야 하는 현실까지 겹쳤다. 하사에서 원사, 소위에서 대장까지, 전투 준비보다 사고 예방이 더 중요한 과업이 된 행정 군대 속에서 간부는 군복 입은 보이스카우트를 돌보는 보호자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설에도 빈틈없는 경계작전
(서울=연합뉴스) 강원 지역에 많은 눈이 내린 12일 오전 을지부대 장병들이 최전방에서 빈틈없는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2023.12.12 [국방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군을 청년이 선호하는 직장으로 바꿀 수 있는 해법은 간단하다. 급여 인상도 중요하지만, 제대 이후의 삶을 재설계해주는 게 필요하다.

장기 복무자에게는 수도권 아파트 특별공급 등 주거 안정과 양육 지원은 물론이고 수도권 근무 기회 확대, 다양한 보직 경험, 복무 후 취업·창업 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단순히 간부 월급만 올리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이제 군은 더 이상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이 아닐뿐더러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만으론 지속될 수 없는 직역이 됐다. 장교와 부사관이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군, 그것이 강한 군대의 출발점이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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