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도입됐지만, 대상 기업 3분의 1은 미공시…법적 제재 없어
김위상 의원 "법적 근거 등 불명확해"…공시 의무 담은 법안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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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옥성구 기자 = 기업이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일·생활 균형 공시제'(워라밸 공시제)가 올해 처음 도입됐지만, 공시를 누락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연구용역에서도 실효성 지적이 있었으나, 기존 공시제를 그대로 따르다 보니 대상 기업 3분의 1은 관련 정보를 공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노동부가 발주했던 '일·생활 균형 경영공시제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 결과보고서에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참여를 의무화해도 법적 강제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담겼다.
워라밸 공시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기업들이 육아휴직, 출산휴가, 시차출퇴근 등 각종 일·생활 균형 제도 도입 현황을 일반에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구직자나 일반인들이 육아휴직 사용률이나 유연근무 활용률 등이 부족한 기업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 가정 친화적인 직장 문화 확산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노동부는 국내외 유사 도입사례를 검토하고 제도 효과를 예측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줬다.
작년 12월에 나온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공시제의 실효성 지적과 함께 정부 지원 필요성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법적 미비와 더불어 "기업별로 사용률을 높여 공시하기 위한 부작용 등이 예상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생활 균형의 기준에 대한 모호함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일·생활 균형 달성은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만족도의 영역"이라며 "이를 섣부르게 수치화하거나 계량화해 단순 비교 항목으로 삼는 건 불필요한 서열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상장기업·금융기관 경영공시제는 참여가 강제되고, 공시지표가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설정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일·생활 균형 공시제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생활 균형 달성에 관한 부담을 사용자에게만 지우는 건 타당하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촬영 고미혜]
연구용역을 거친 후 워라밸 공시제는 올해 3월부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의 사업보고서에 육아휴직 정보 등을 기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도입됐다.
노동부는 별도 공시 방안도 검토했으나,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DART를 통해 공시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러나 공시 대상이 되는 상장 기업 10곳 중 3.5곳은 정보를 기재하지 않거나 파악조차 불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받은 코스피 상장사 848곳 사업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육아휴직 정보 미공시 기업은 221곳(26.0%), 정보 미기재 기업은 77곳(9.1%)이었다.
공시를 누락해도 법적 강제력이 없는 지침 수준의 제도라는 게 실효성 부족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육아휴직 정책은 노동부가 담당하지만, 정작 공시는 금감원 제도를 활용해 관리 사각지대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의 연구용역에 담긴 실효성 지적과 정부 지원책이 공시제에 모두 반영되지 못하고 명목적으로만 운영된 탓에 사실상 유명무실 제도가 된 것이다.
김위상 의원은 "공시제가 도입됐지만 법적 근거와 부처 간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벌써 제도가 사문화돼 가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우선적으로 공시 의무를 강제하는 제도적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 일본의 경우 2023년부터 근로자 1천명 이상 기업은 육아휴직 사용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상장 여부가 아닌 상시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은 매년 육아휴직 사용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나아가 휴가비용 지원이나 사업장과 연계한 직무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 사업장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부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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