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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웨스팅하우스와 팀코리아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22 18:35

수정 2025.10.22 18:35

전후 세계 원전 주도하다 몰락
기술·미래 팔고 단기이익 급급
트럼프 정부 새국면 부활 시동
韓 글로벌 수주전 시너지 찾길
현재 美보다 압도적 시공능력
속도전 밀리면 기회 다시 없어
최진숙 논설위원
최진숙 논설위원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이 이끄는 직류 전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가 또 다른 발명왕 조지 웨스팅하우스다. "전기는 도시를 넘어 모든 공장과 가정에 도달해야 한다." 188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전기회사 웨스팅하우스를 만들고 대중 앞에서 밝힌 회사 비전이다. 증기기관에서 전기로 산업 패러다임이 막 바뀌던 시기였으니 말할 수 없는 혁신적 미래였을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에디슨을 더 기억하지만 당시 전류 전쟁의 승자는 웨스팅하우스다.

교류 전기로 도시 전체를 환하게 밝히며 현대 전력시스템의 근간을 다 바꿨다. 웨스팅하우스는 당시 드물게 하루 8시간 근무제와 직원 안전 보호장비를 도입했다는 기록도 있다. "기술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창업주의 소신이었다. 지금은 원전기업으로 익숙한 웨스팅하우스의 시작은 이렇게 거룩했다. 진정한 전성기는 전후 원전산업 개척기와 궤를 같이한다. 창업주는 1910년대 퇴장하지만 그의 기업 유산은 그 후 50년은 더 빛을 낸다. 웨스팅하우스는 1930년대 정부 원자력 연구에 참여했고, 미국 정부가 민간 원전 건설을 허용한 1950년대 곧바로 핵기술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정부 연구비, 기술자료, 핵연료 공급망을 독점적으로 활용했다. 웨스팅하우스가 세계 첫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인 시핑포트(1957년)를 완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세계 원전의 절반을 웨스팅하우스가 짓는 시절은 그 후 열린다.

몰락의 과정은 이보다 극적일 수 없을 것이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후 원전의 겨울이 닥치면서 붕괴가 시작됐다. 미국 제조업의 심장이었던 회사가 기술과 미래를 팔고 사들인 것은 단기수익에 요긴한 방송사(CBS)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공장과 생산라인, 연구소, 특허자산을 팔아치웠다. 원자력은 영국 원전연료회사(BNFL)로 넘어갔다가 다시 일본 도시바에 인수된다. 기술 의지를 잃은 웨스팅하우스의 시공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비용 초과, 공기 지연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미국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고, 모기업 도시바도 함께 무너진다. 기막힌 기업사다.

다시 캐나다 사모펀드에 팔린 웨스팅하우스를 시장으로 불러들인 건 다름 아닌 미국 정부다. 에너지 독립과 원전 패권의 부활을 노리는 미국에 자국의 원전 원조 멤버 웨스팅하우스는 절실한 존재다. 지난 트럼프 1기 때부터 그랬다. 트럼프 정부는 웨스팅하우스를 미국 원전산업 전략적 자산으로 규정하고 원전기술(AP1000)은 아예 수출 전략무기로 지정했다. 트럼프 정부가 작정하고 키우는 원전 시장에서 웨스팅하우스가 돌고 돌아 다시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원전팀이 승기를 잡았던 체코 수주전에서 원천기술 지분을 요구하며 우리의 뒷다리를 잡았다. 한국의 원전 수출 통제권을 가진 미국 정부는 신중한 행보를 보이는 듯했으나 결국엔 웨스팅하우스 손을 들어줬다. 웨스팅하우스 사태의 본질을 한국 원전의 팽창이 신경 쓰이는 미국 정부의 견제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여러 정황상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우리 측 협상팀이 체코 수주 직전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협정을 두고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자립엔 성공했으나 독립 수준이라고 보기엔 이른 상황에서 독자기술 운운한 탓에 대가를 치렀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우리와 비슷하게 웨스팅하우스의 원천기술을 공유한 프랑스가 큰 잡음 없이 해외 수주를 따냈던 것과도 비교가 된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향후 전망이다. 시공 실력을 비교하면 웨스팅하우스는 우리보다 한참 뒤처진다. 미국 정부가 부담으로 느낄 만큼 팀코리아의 시공력과 미션 해결능력은 한수 위다. 웨스팅하우스야말로 현재로선 독자적 힘으로 사업 진행이 불가능하다. 한국과 협업이 간절한 쪽은 웨스팅하우스이고, 미국일 수 있다. 하지만 원전 패권 의지가 강력한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웨스팅하우스의 속도전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자사 기술 AP1000 사업을 추가로 확대해 단가를 낮추고 시공 노하우를 표준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소형모듈원전(AP300) 개발도 서두른다. 핵연료 공급, 연료 정비 서비스 등으로 다각화까지 시도하고 있다.

우리로선 지금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소모적 논쟁보다 시장 장악력을 높일 방안을 찾는 게 현실적이다. 내수 기반이 튼튼해야 해외에서 뛸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원전은 이제 국가 리더십의 영역이 되고 있다. 지속적인 지원이 관건이다.
쉬었다 가면 시장도 잃고 기술도 밀릴 수밖에 없다.

jin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