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금융당국이 주식시장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상장폐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상장관련 규정을 다루고 있는 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 상장폐지제도를 더 강화하는 방안으로 규정을 개정했다.
지금까지 코스닥상장사는 연간 매출액 30억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했지만 개정 이후 100억원으로 대폭 높아졌다. 시가총액 기준 역시 40억원 미만이었지만 개정 이후 300억원으로 올라갔다. 다만 매출액, 시가총액 기준은 단계적으로 상향한다. 내년에는 매출액 기준을 현행 30억원으로 유지하고(1년 유예), 시가총액은 150억원을 적용한다.
문제는 지금의 매출액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코스닥 상장사가 많았다는 점이다. 앞서 비즈워치가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총 1523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매출액 30억원을 넘기지 못한 코스닥 상장사는 38곳이었다. ▷관련기사: '관리종목 지정·상장폐지 위험'…단순 경고가 아니었다(4월 17일)
금융당국이 회초리를 들자 매출을 제대로 내지 못하던 38곳 가운데 올해 상반기 돈을 벌기 시작한 회사들이 나왔다. 다만 본업과 거리가 먼 분야에서 매출액을 늘려 상장폐지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거나 여전히 제대로 된 매출액을 내지 못하고 자본잠식까지 당하는 등 부실한 코스닥 상장사도 많았다. 매출액 기준 상향, 초점은 '코스닥 상장사'
금융위원회가 지난 1월 내놓은 상장폐지 제도 개선안은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모두 상장폐지 기준 중 하나인 매출액과 시가총액 요건을 상향하는 방향이다.
다만 제도개선의 초점은 유가증권보다 한계기업이 많은 코스닥에 맞춰져 있다. 실제 금융위가 상장페지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서자 코스닥 상장사들 사이에서 논란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기술특례상장으로 들어와 상장 이후에도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코스닥 상장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코스닥에서 상장유지를 위한 매출액 기준은 30억원, 시가총액 기준은 40억원이다. 해당 금액을 넘지 못하면 상장폐지심사의 전 단계인 관리종목에 들어간다.
금융위는 제도개선을 통해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매출액 기준을 30억원(2026년)→50억원(2027년)→75억원(2028년)→100억원(2029년)까지 높일 예정이다. 시가총액 기준도 40억원(현행)→150억원(2026년)→200억원(2027년)→300억원(2028년)으로 늘린다. 거래소는 지난 7월 9일 해당 제도개선안을 그대로 반영, 코스닥 상장규정을 개정했다.
2024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해당 기준을 적용하면 당장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는 코스닥 상장사는 총 38곳이다. 지난 1년간 매출액이 단 1원도 나오지 않은 곳은 △메드팩토 △보로노이 △큐로셀 △티움바이오 △파로스아이바이오 5곳이었다. 또 △브릿지바이오 △이노스페이스 △샤페론 △지아이이노베이션 4곳은 지난해 1000만원~2000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합병·신사업 등 통해 신규매출 확보
올해는 매출액 30억원을 넘겨야 하는 만큼 상반기 38곳 코스닥 상장사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상장폐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매출액 0원을 기록한 △메드팩토 △보로노이 △큐로셀 △티움바이오 △파로스아이바이오 가운데 △메드팩토 △보로노이 △티움바이오 3곳은 올해 상반기 약 13억원에서 34억원 사이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올해 상반기 별도재무제표 기준 메드팩토는 12억700만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지난 2019년 상장한 메드팩토는 상장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매출을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처음으로 매출액 4억3000만원을 냈고 2분기에는 이보다 더 많은 8억4000만원의 매출액을 올리면서 상반기 누적매출 12억7000만원을 기록했다.
그동안 메드팩토는 신약개발 과정이어서 상품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주들에게 설명해왔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최초로 분기 및 반기보고서 '사업의 내용'에 매출에 관한 사항을 표기했다.
메드팩토가 매출을 낸 부분은 유전체 분석서비스 및 건강기능식품 판매다. 본래 이 회사의 본업은 유전체 분석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약개발이지만 아직 임상시험 단계라 신약개발과 관련한 매출은 전혀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회사는 대학교나 병원 등의 의뢰를 받아 유전체 연구분석 서비스를 했고 건강기능식품 판매를 통해 올해 상반기 첫 매출을 냈다. 지난 2023년 동물용의약품·화장품·식품 및 식품첨가물 제조 및 판매, 의료기구 제조 및 판매 등의 사업목적을 정관에 추가한 덕분이다.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는 티움바이오도 올해 3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을 올렸다. 2019년 상장 당시 티움바이오는 매출액이 나오던 곳이었지만 이후 2023년, 2024년 2년 연속 매출액 0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티움바이오는 별도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21억1600만원을 기록했다. 상반기에만 상장폐지 기준(30억원)의 70% 이상을 달성했다. 2년 연속 매출이 없었던 티움바이오가 상반기 일정수준의 성과를 낸 것은 천연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 페트라온을 흡수 합병했기 때문이다.
페트라온의 매출액을 티움바이오가 그대로 인식하면서 상반기에만 21억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한 것이다. 다만 티움바이오 본업과 관련한 자체 매출액은 여전히 0원인 상황이다.
매출 30억 한참 부족한 상장사도 다수
매출액이 0원이었다가 상장폐지 기준인 30억원에 가깝게 신규 매출을 낸 곳도 있지만 여전히 매출액이 턱없이 부족한 코스닥 상장사도 다수다.
지난해 매출액 0원을 기록했던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액 0원을 기록 중이다. 큐로셀 역시 지난해 매출액 0원이었지만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액 0원을 기록했다.
위성 발사체 제작 및 발사서비스를 하는 이노스페이스는 지난해 매출액 1500만원을 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이보다 많은 6억9200만원을 기록 중이지만 여전히 상장폐지 기준인 30억원에는 못 미친다. 회사는 본래 올해 3월 첫 상업용 발사체였던 한빛-나노의 발사를 진행하려 했었지만 발사 계획이 계속 미뤄지면서 관련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이노스페이스는 결국 지난 8월 480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빌린 돈을 갚고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24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지아이이노베이션도 올해 상반기 3억3800만원의 매출을 내는데 그쳤다. 2023년에는 기술이전에 대한 성과로 53억원의 매출액을 냈지만 2024년과 올해는 아직까지 기술이전 관련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그 밖에 △바이젠셀 △비트맥스 △차백신연구소 △에스바이오메딕스 △에이비온 △툴젠 등이 올해 상반기 60만원에서 6억원대 사이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하반기까지 30억원 이상의 매출액을 달성하려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매출액도 부족한데...자본잠식까지?
매출액도 부족한데 자본잠식까지 들어간 상장사도 있다.
파킨슨병 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카이노스메드는 지난 8월 자본잠식률 79.76%를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회사의 자본금은 165억원인 반면 자본총계는 33억원에 불과해 자본잠식이 일어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회사가 매출액 역시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이노스메드는 지난해 5억9000만원의 매출액을 냈고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5억4500만원을 기록했다. 상장폐지 기준인 30억원을 달성하려면 아직도 25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부족하다.
1년 치 매출액 30억원 달성도 중요하지만 분기 및 반기에 적정 수준의 매출액을 달성하는 것도 필수다. 코스닥 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분기 매출액이 3억원 미만이거나 반기 매출액이 7억원 미만이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오른다. 분기 및 반기 매출액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카이노스메드는 지난달 14일부터 거래정지상태다.
체외진단 전문기업 피씨엘은 지난해 매출액 12억4600만원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 매출액 37억1400만원을 냈다. 상장폐지 기준을 가뿐히 넘긴 것이다. 다만 이 회사 역시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이 6300만원에 불과해 분기 매출 3억원을 넘기지 못하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됐다.
갑자기 매출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10월 임시주총을 통해 의약품 도소매업, 섬유 및 원단 도소매업 등 기존 사업영역과는 다른 신규 사업을 추가한 영향이 컸다. 회사는 올해 반기보고서에 "안정적인 매출 증진을 위해 시작한 상품서비스(의약품 및 원단 유통)는 지난해 서비스 시작 시점엔 이익률이 낮았지만 올해부터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거래구조로 개선돼 매출확대 및 이익률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씨엘은 주력 사업의 경쟁력 확대가 아닌 새로운 사업을 추가해 매출 요건은 충족했지만 지난 8월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적은 자본잠식에 빠졌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반기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자본총계(25억원)가 자본금(296억원)보다 적어 자본잠식률이 91.5%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에 회사는 지난 2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자본금 감소를 위한 무상감자를 통과시켰다. 회사가 신규사업 추가를 통해 매출액 요건은 넘긴 상황이지만 근본적인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개선해야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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