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이 한국을 글로벌 핵심 공급망 거점으로 지목하고 투자 확대에 나선다. 협력사 조달을 늘리고 엔지니어 인력을 확대해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 등 차세대 기술 연구에 속도를 내 한국의 역할을 한층 키운다는 구상이다.
한국을 연구·조달 허브로…투자 확대·엔지니어 증원
윌 셰이퍼 보잉코리아 사장은 2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보잉·대한민국 파트너십 75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한국 협력사와 공급사 조달에 3억2500만 달러(한화 약 4536억원)를 투입했으며 올해 수익 규모와 737·787·777-9 항공기 생산 증대 계획을 고려하면 이 규모가 최대 5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차원에서도 한국 내 입지를 확대한다. 서울 ASEM타워에 위치한 보잉코리아기술연구센터(BKETC)는 현재 100여 명의 엔지니어가 근무 중이며 내년까지 20% 증원할 계획이다. 이들은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항전시스템, OLED 디스플레이 기술, AI 데이터 자동화(ARL 프로젝트) 등 차세대 항공기 개발에 직결되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보잉과 한국의 인연은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잉은 대한국민항공(현 대한항공)에 DC-3 여객기를 공급하며 국내 민간 항공산업의 출발을 함께했다. 이후 양측 협력은 75년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보잉의 737·787·777X, 777-8F 화물기 등 차세대 항공기 103대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362억 달러(약 50조5000억원)에 달하는 이번 계약은 대한항공 역사상 최대 규모 주문이자 아시아 항공사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발주 사례로 꼽힌다.
셰이퍼 사장은 "우리는 한국 정부와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하며 고객사를 지원하는 동시에 한국 내 사업도 함께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KAI 협력 강화…시장 지배력 공고화
보잉은 한국 상용기 시장의 약 63%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 중 대한항공은 가장 대표적인 고객사다. 장거리 네트워크 확장을 꾀하는 대한항공의 전략과 보잉의 최신 기종 라인업이 맞물리면서 양측 협력은 한층 강화되는 추세다.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제주항공·티웨이항공·에어프레미아 등 저비용항공사(LCC)도 보잉 기종을 도입해 운용 중이다. 풀서비스항공사(FSC)와 LCC 모두를 아우르는 고객 저변이 보잉의 한국 내 시장 지배력을 떠받치는 토대가 되고 있다.
방산 부문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핵심 협력사로 자리한다. KAI는 아파치 헬기 동체 제작과 정찰기 개조 사업에 참여하며 보잉의 글로벌 프로그램에 직접 연결돼 있다. F-15K 슬램이글 공동개발, 한화·LIG넥스원과의 항전·제어시스템 협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군은 F-15K, AH-64 아파치, CH-47 치누크, E-737 피스아이, P-8 포세이돈 등 다양한 보잉 플랫폼을 운용하고 있다.
셰이퍼 사장은 한국이 보잉 글로벌 소싱 국가 가운데 5~6위권에 해당한다면서 단순 구매국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축임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소프트웨어 개발과 AI 엔지니어링, 자동화는 물론 조선·자동차 산업까지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보잉은 글로벌 항공우주 기업으로서 이러한 혁신 역량과 문화를 적극 활용해 차세대 혁신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